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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19 18:47 수정 : 2015.10.19 22:03

그는 몇 시간씩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와 매주 시창작 강의를 듣는다. 초로의 희끗희끗한 모습으로, 젊은이들과 함께 강의실에 앉아 있다. 이 학생께서는 자신이 재능이 있는지, 계속 써도 되는지, 이제 그만 쓰는 게 맞는지를 이제는 확인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 유의 대답을 할 자격이 내게 없거니와, 나도 바로 그걸 확인하고 싶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보니, 무슨 말을 해드려야 하나 싶어 아득해졌다. 카슨 매컬러스의 단편선 <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에 수록된 단편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요?’에서 “작은 재능은 신의 가장 큰 저주”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누군가에게 몹쓸 것을 들킨 기분이 들었다. 불쾌한 문장이라 생각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천재라고 정평이 나 있는 카슨 매컬러스도 자기 자신에게 쏘는 화살로서 이 문장을 썼으리라 짐작했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시를 쓰고 살고 있는 한, 이런 식의 문장만이 내겐 가장 합리적인 문장이다. 그분과 함께 읽고 싶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도중도 위험하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험하고, 덜덜 떨며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인간이 다리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의 사랑할 만한 점은, 인간이 건너감이고 몰락이라는 데 있다. 나는 오로지 몰락하는 자로서만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저편으로 건너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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