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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8 18:35 수정 : 2015.10.28 18:35

가을에 누군가는 간절기 옷을 장만하고, 누군가는 단풍놀이를 하러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는 입맛이 돌아 맛있는 걸 찾아 먹고, 누군가는 안 읽던 책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이사를 한다. 누군가는 우울함에 젖어 세상을 겉돌며 방황하고, 누군가는 야외 스포츠를 즐기며 날씨를 만끽한다. 누구든 자기 방식대로 가을을 탄다. 나는 가을이면 언제나 조금쯤 조급해지곤 했다. 한 해가 이렇게 저물어가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생긴다. 매사 게으르게 지낸 탓에, 올해는 도대체 무엇을 했나 후회가 생기는 것이다. 나처럼 놀기 좋아하는 사람과 게으르기까지 한 사람은 대체로 가을이면 허무함과 조급함을 함께 느끼며 당황할 것이다. 요즘은 오래오래 묵혀둔, 지난 원고들을 정리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작년에도 올해엔 출간을 하려 한다고, 지난여름에도 올해엔 출간을 하려 한다고, 말하고 다녔던 단행본을 정말로 출간하기 위해서다. 어렸을 때에 내가 다니던 학교의 도서관 벽에는 멋들어진 붓글씨로 쓰인 문장이 액자로 걸려 있었다. “게으른 자가 석양에 바쁘다.” 어렸을 땐 나같이 게으른 자들을 조롱하는 느낌이 들어서 언짢다고만 생각했는데, 해마다 시월이 가고 11월이 찾아올 때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어렸을 때에 보았던 건 이렇게나 평생 동안 따라붙는다. 좀더 멋진, 가르침이나 깨달음 따위가 배제된, 궁극적인 문장 하나를 그 시절에 목격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가을을 보내고 있었을까.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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