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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27 20:09 수정 : 2016.04.27 21:56

장난감처럼 생긴 손목시계 몇 개를 계절마다 바꿔가며 차는 것을 즐기는데, 해마다 하나 정도가 약이 닳아 멈춰버린다. 서울 외곽의 신도시를 전전하며 살아서일까. 언젠가부터 멈춘 손목시계에 새 건전지를 넣어주는 것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작년에는 제주도에 강의를 하러 갈 일이 있어 하루 일찍 도착해 재래시장을 구경할 계획을 세우며, 여행가방에 멈춘 손목시계 두 개를 챙겨넣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장 초입에 시계방이 있었다. 너무나 다양한, 너무나 많은 벽시계들이 일제히 같은 시각을 가리키며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풍경, 너무나 많은 손목시계들이 유리 진열대 속에 반짝거리며 진열된 풍경, 한편으로는 정겨웠고 한편으로는 낯설었다. 시계방 주인은 외눈안경을 쓰고 자그마한 드라이버를 들고, 새 건전지를 넣어 시간을 맞춰주었더랬다. 이번에는 가장 즐겨 차던 시계 하나가 멈췄다. 멈춰버린 지 두어 달은 되어간다. 몇 번쯤 외출하며 혹시나 하고 가방 속에 챙겨보았지만 시계방을 찾지 못해 매번 그냥 갖고 들어왔다. 지금도 책상 위 바구니에, 매일매일 챙겨들고 나가는 물건들과 함께 놓여 있다. 단지 시계가 멈춘 것인데, 그제야 내가 거주하는 이 도시가 얼마나 변해버렸는지를 나는 알아챈다. 넘쳐나는 것들과 소멸하고 있는 것들을 비로소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아무래도, 작년처럼 지방에 가게 될 때에 챙겨가는 경우에나 죽어 있는 시계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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