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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4 19:49 수정 : 2016.05.04 19:49

기차 뒤쪽 어딘가에서 배가 고프다고 줄기차게 떼를 쓰는 아이 때문에 승객들이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가 그 아이보다 더 큰 목소리로 야단을 쳤다. 아이의 우렁찬 목소리는 변하지 않고, 꾸짖는 엄마의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보태져 승객들은 더 불편해졌다. 마침내 엄마는 우유 하나를 사서 손에 들려주고 그 아이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이제 아이는 우유가 너무 맛있다고 소리친다. 엄마는 목청을 높여 협박한다. 네가 떠들면 엄마가 창피해진다고, 당장 목소리를 낮추지 않으면 우유를 빼앗겠다고.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렸던 나는 읽던 책을 덮어버렸다. 방식이 틀린 훈계를 들으며, 상황에 대해 정확한 인식도 못 해본 채로, 괜한 억울함만 쌓여갈 아이의 입장이 되레 안쓰러워졌다. 마치 취향에 대해 말하듯이, 아이를 싫어한다고 단호히 말하던 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 떠들고, 방해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빽빽 우는, 천사의 얼굴을 한 떼쟁이라는 것이다. 떼를 쓰는 아이들을 공공장소에서 마주쳤을 때 그 아이에게 정확한 훈계를 하는 부모를 목격해본 적이 드물었다. 부모는 아이의 입장을 고려할 의지가 없어 보였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그 장소에 있는 것이니, 아이에게 교양있는 방법으로 떼를 쓰는 것 같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한마디면 되는데, 그 말을 아이에게 웬만해서는 하지 않았다. 하면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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