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9 19:16
수정 : 2016.05.09 19:16
옛날 시집들을 꺼내 읽었다. 주로 90년대에 출간된 시집들이다. 활판본 인쇄에, 빛이 바래 있고, 시집 끝 페이지에는 시인의 빨간 도장이 찍힌 인지가 붙어 있다. 값은 삼천원이다. 시들은 지금의 시보다 길이가 짧은 편이다. 짧지만 무섭도록 감정들이 너울거린다. 넘치지 않고 최대치로 간당간당한다. 그릇에 물을 끝까지 따랐을 때 표면장력에 붙들린 볼록한 면처럼. 그 간당거림이 그리울 때에 옛날 시집들을 꺼내 읽곤 한다. 그 시절 새 시집이 출간되면 무조건 서점에 달려갔다. 모든 시집을 사 모았다. 맛있다고 소문난 분식집은 있었어도 맛집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시절이 아니어서 먹는 일에 필요 이상의 돈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카페도 지금처럼 즐비하지 않았을뿐더러 원두의 맛도 잘 몰랐으니 자판기 커피면 충분했고, 라디오를 통해 음악은 즐겨 들었지만 찾아갈 만한 공연은 흔치 않았으니 연례행사처럼 손꼽아 기다리며 지냈다. 그랬던 시절이었으므로 시집을 사 모으는 일은 유일하게 즐기던 소비생활이었다. 주머니 사정은 항상 나빴지만 가격에 부담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일 년에 출간되는 시집이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다. 사 모은 시집들을 이렇게 세기가 바뀐 후에도 다시 꺼내어 읽게 되리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에 대하여 정보가 넘쳐나지만 주머니 사정은 여전할 요즘의 이십대는 어디다 돈을 쓰고 살까. 살아야 할까. 시급 알바, 그 귀한 돈의 안부가 늘 궁금하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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