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6 19:14
수정 : 2016.05.1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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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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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한 통을 받았다. 나와 함께 시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 시가 자기 인생에 위로가 된다는 말과 함께 자기 자신이 생각처럼 구질구질하지 않다는 걸 시로 인해 알게 되어 기쁘다는 고백이었다. 답장을 보냈다. 진심으로 칭찬할 수 있는 깨끗한 기회를 너는 내게 선물해준 사람이었다고. 기쁘고 흔쾌하게 너의 시가 참 좋다는 말을 할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답장이 왔다.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맙다고. 시를 가르치다 보면, 가르쳐서는 안 되며 가르치는 건 불가능한 걸 가르치려 드는 이 밥벌이를 어쩌면 좋은가 싶을 때가 태반이다. 칭찬을 하여 용기를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들이 쓴 시를 읽고 조목조목 실수들을 짚는다. 낙담하여 의기소침해진 아이들의 표정을 등에 업고 귀가를 한다. 어떤 식으로든 용기를 얹어주었어야 했다는 후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나 낙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전하는 칭찬은 소용스럽지 못하다. 위로를 위하여 행사되는 칭찬임을 그들이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다른 종류의 낙담을 한다. 절박할수록 진짜 칭찬과 진짜 위로와 진짜 교감을 더 잘 알아본다. 사람을 만나면 꼭 그렇지 않으면서도 마지못해 기뻐한 적도 있고, 기뻐해주길 바라는 게 보여서 기뻐질 때도 있고, 그저 마냥 기쁠 때도 있다. 그저 마냥 기쁠 때에는 주고받는 것이 숨김없이 깨끗한 상태일 때다. 오늘이 내겐 그런 날이었다. 고맙다는 말이 온전히 고마웠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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