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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06 19:16 수정 : 2016.06.06 19:16

어떤 제안을 받았다. 재미있을 것도 같아서 승낙을 했다. 큰 기대를 했거나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다고 기대하던 일은 아니었다.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고 안 해본 경험이라 조금쯤 호기심도 있었다. 그 일을 그리하여 하게 됐고,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지루했고 시간만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누군가에게 일러두듯 생각을 해두었다. 누군가에게 일러두듯 생각해두지 않으면 명심하지 못할 게 뻔하다. 겪고 나서야 거절할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는 나 자신이 못마땅했는데, 이제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미리 헤아리지 못하는 게 나의 특징이려니 한다. 두 번씩 반복하는 일만 없길 바란다. 어쩌면 인생 전체가 이런 시행착오로만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싶다. 죽는 날까지 경험할 필요 없는 일들만을 경험하며 살다가 인생 자체를 낭비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을지라도, 커다란 후회는 안 해야겠다 생각한다. 수많은 인생 중에 시행착오뿐인 인생도 있을 테고, 하필 그게 내 인생일 뿐이었다고 여길 수 있었으면 한다. 대신, 같은 실수가 아닌 다른 실수, 같은 시행착오가 아닌 새로운 시행착오, 겪어본 적 없는 낭패감과 지루함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빛나는 경험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안 믿는다. 경험이란 것은 항상 일정 정도의 비루함과 지루함과 비범함과 지극함을 골고루 함유한다. 돌이킬 수 없는 극악한 경험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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