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9.06 18:26
수정 : 2015.09.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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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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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가려고 삼선교에서 택시를 탔다. 선글라스를 낀 젊은 기사가 유쾌하게 말을 걸었다. “오늘 두 번이나 죽다 살았어요. 미아리에서 꼬리 물기 했는데 교통경찰이 있더라고요. 뒤차 잡느라 나는 보내줬죠. 방금 전엔 좌회전 신호 무시하고 통과했거든요. 이번에도 경찰이 있었는데 앞차 단속하느라 못 봤어요. 이틀이나 공칠 뻔했어요.” “축하드려요.” 차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다. 광화문광장에는 세월호 집회를 위한 천막이 초가을 햇살을 받아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기사가 다시 말을 붙였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허구한 날……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멈추지 않겠죠?” 귀를 의심했다. “아니,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잖아요? 아이들이 그렇게 죽었는데요?” “배가 침몰해서 죽은 거잖아요?” 논쟁에서 가장 큰 무기는 무지(無知)다. 어떤 말로도 그를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시 기가 막혀 말을 잃었고, 정신을 차리고 이야기하려고 했을 때에는 시청에 도착해 있었다. 나도 안다. 왜곡된 언론이 제공하는 거짓 정보와 편 가르기 정치가 빚어낸 적의와 긴 시간 이어온 피로감을. 그런데 최소한의 공감능력은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딱지 떼지 않았다고 부활을 얘기하면서 부활할 수 없는 자식을 둔 부모들을 손가락질하는 건 아니지 않나. 딱지는 사소한 죗값이지만 저 아이들은 신호 위반조차 한 적 없는데. 세월호 507일째 날이었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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