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9.22 18:40
수정 : 2015.09.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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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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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말했다. “‘섬집 아기’란 동요 있잖아?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하는 노래.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 그런데 신기한 게, 이 노래 부르면 아기가 금방 잠이 들어.” 이런 게 슬픔의 힘이 아닐까? 슬픔은 먼저 생활고에서 온다. 엄마는 아기를 놓아두고 먹을거리를 구해야 하고, 아기는 아무도 없는 집을 혼자 지켜야 한다. 그다음 슬픔은 연대에서 온다. 아기가 혼자라는 걸 알아챈 파도가 엄마 대신 자장가를 불러주고 착한 아기는 기다리다 잠이 든다. 아기는 여전히 혼자고 파도 역시 저 혼자 왔다 갈 뿐인데, 그렇게 외로운 존재끼리 서로 통하는 게 있다. 외로우니까 파도에 귀를 기울이고 외로우니까 외딴집까지 찾아오는 것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 감정이 아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혼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픔이 하나 더 있다. 아기를 버려두고 일하러 가야 하는 엄마 말이다. 엄마는 2절에서 결국 굴 바구니를 다 못 채운 채 허겁지겁 돌아오지만, 그렇다고 생이별이 위로받을 수는 없으며 타는 애간장이 식을 리도 없다. 사실 이 노래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재회하기 전에 노래가 끝나기 때문이다. 아기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이 슬픔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직장을 포기한 풍찬노숙의 삶, 그 슬픔을 겪은 이들끼리의 연대, 여전히 만나지 못한 아이들. 2015년 9월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섬이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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