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04 18:45
수정 : 2015.10.0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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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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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탄식했다. “속상해 죽겠네. 또 긁어댔어.” 아기 얼굴을 보니 이마에서 왼쪽 볼까지 온통 붉은 줄이다. 어제 난 상처까지 모두 다섯줄이다. “손톱을 바짝 깎아줘도 이러네.” 자는 모습을 보면 왜 그렇게 상처가 나는지 이해가 된다. 잠결에 아기는 얼굴을 마른빨래하듯 비비고 주무르고 긁어댄다. 더 어릴 때엔 장갑을 끼워서 방지했는데, 손의 감각을 키울 때가 되어서 장갑을 벗긴 후로는 매번 얼굴이 스카페이스다. 금방 아무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면 뭐하나, 매번 새로운 금을 긋는데. 얼굴이 도화지 같다. 그것도 빨간 펜으로만 그리는. 어떻게 보면 손동작을 따라 난 저 상처들은 밭이랑 같기도 하다. 꿈을 꾸면서 아기는 자기 얼굴을 경작한 것이다. 라틴어 쿨투라(cultura)는 ‘경작하다, 거주하다, 경배하다, 보살피다’ 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여기서 식민지(colony), 의식(cult), 문화(culture) 같은 말들이 나왔다. 아기는 자기 얼굴을 밭 갈면서 자기 얼굴의 주인이 되고, 자신을 기리는 의식의 집전자가 되며, 자연에서 벗어나 인간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삶 쪽으로 넘어오기 위한 문턱이라면 어쩌겠나. 이렇게 위안을 해도 저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아침마다 붉은 줄이 그어지는 건 참 못 볼 노릇이다. 자고 일어나니 이번엔 코와 오른쪽 턱 부근을 맹렬히 갈아놓았다. 어휴, 앞으로 ‘갈아 만든 배’ 이런 음료는 안 먹는다, 안 먹어.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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