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25 18:47
수정 : 2015.10.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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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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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시인 하면 김소월이고 국민 애송시 하면 <진달래꽃>이지만, 의외로 이 시의 올바른 뜻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문학 교과서에서는 이 시가 임과 이별하는 장면을 노래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떠나는 임을 축복함으로써 원망을 넘어선 사랑, 슬픔을 넘어선 한(恨)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전제부터 틀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이라고 했으니 가정법이다. 임은 가지 않았다. 가기는커녕 고백하는 바로 내 앞에 서 있다. 이미 역겨운 지경에 이르면 사랑이고 뭐고 없을 것이다. 머리끄덩이나 안 뜯기면 다행이다. 그런데도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내가 품은 사랑이 이토록 크다는 고백이다.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 내가 싫어 간다고 해도 보내줄게. 사랑은 소유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자유에 대한 권리라는 것을 일러주는 멋진 고백이다. 요즘 친일파들이나 할 만한 말들이 자주 귀를 괴롭힌다.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는 일제강점기 의병 학살을 의병 토벌이라고, 쌀 수탈을 쌀 수출이라고 썼다. 총리는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의 입국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대통령의 동생은 “천황 폐하께서 사과를 했는데 자꾸 과거사를 언급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강변했다. 국민들에게 가정법으로 하는 말 같다. 역겹지? 그러니까 정치는 거들떠보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둬. 당신은 멀리 가 있어. 실은 우리가 멀리 떠나서 이런 꼴을 겪는 것인데도. 말폭력이 너무 세서 “사뿐히 즈려밟”힌 느낌이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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