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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01 18:47 수정 : 2015.11.01 18:47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청령포에 다녀왔다. 서강의 물길이 암벽을 만나 돌아나가는 곳에 자리한 크지 않은 명승지다. 아름드리 관음송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 단종의 적소가 있어 쓸쓸하고 적막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배산임수이긴 한데 지세가 북향이라 종일 그늘이 져 단종의 심사가 이랬겠거니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몇 년 만에 다시 온 청령포는 무참했다. 강물이 돌아나가는 곳이 토막 난 채 저류지와 이어져 있었다. 청령포를 관람하기 위해 주차장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그 조그만 명승지를 보기 전에, 그보다 열 배는 큰 영월강변저류지와 대면해야 한다. 2012년에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이 수변공원은 다른 지역과 똑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 홍수를 예방하고 생태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친환경 공원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1532억원을 들여 지은 이 공원은 이듬해부터 녹조와 청태로 주민들의 외면을 받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한다.(<연합뉴스> 2013년 10월30일 보도) 4대강 사업이 유사 이래 최대의 환경재앙을 불러온 토목 사기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요즘, 그 독한 각하께서 손댈 수 있는 곳은 전부 다 꼼꼼하게 더럽혔구나 싶었다. 더구나 이곳은 단종의 혼이 서린 서늘한 적소가 아닌가. 청령포와 장릉(단종의 능)을 녹조로 이을 생각을 하다니,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 지난번에는 사약을 들고 오더니 이번에는 녹조를 들고 왔구나. 청령포 뒤의 암벽이 내 눈에는 부엉이바위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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