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03 18:42
수정 : 2015.11.0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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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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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암흑기라고 부른다. 그래서 8·15가 광복(光復)이다. 우리는 정말로 빛을 되찾은 것일까? 오히려 그때보다 더 캄캄해진 것 아닐까? 그때엔 적이 바깥에 있어서 어둠과 빛이 뚜렷했으나, 지금 적은 내부에 있다. 적은 내부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갈라 치고 토막 내고 분리해낸다. 분단이 우리를 적대적인 둘로 나누었다. 친일파들은 버젓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제 편이 아닌 사람들을 종북 딱지를 붙여서 분리해낸다. 처음에는 정치인에게만 적용하더니 이제는 역사학자의 90%가 종북이고, 국정교과서 반대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는 노인들이 청년들 일자리 뺏는다고 공격하더니, 청년배당 앞에서는 어른들에게 갈 복지비용으로 청년들을 매수한다고 손가락질이다. 어버이나 엄마라는 이름의 알바생들은 어디서나 나타나서 패악을 떤다. 친노니 친박이니 하는 말들도 패를 가르는 말이기는 마찬가지다. 혐오와 적의의 말들을 끝없이 양산하는 시대다. 캄캄한 어둠이다. 어둠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감벤은 “빛의 부재가 ‘오프셀’(off-cells)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망막 내 말초세포를 활성화”시키며, 이 세포들이 활성화되면 “우리가 어둠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시각상이 생긴다”고 말한다. 동시대인이란 “이 어둠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어둠이 결핍의 결과가 아니라 적극적인 시선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랬구나, 두 눈 부릅뜨고 이 어둠을 보아야 한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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