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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08 18:44 수정 : 2015.11.08 18:44

권혁웅 시인

화랑 관창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모골이 송연하다.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 결사대를 이기지 못하자, 신라 장군 품일의 아들 관창이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여러 사람을 베었다. 사로잡아 보니 어린아이인지라 계백이 그를 살려 보냈다. 관창이 이기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는 다시 적진에 뛰어들었다. 계백이 할 수 없이 목을 베어 돌려보냈다. 이를 본 신라군이 용기백배하여 백제군을 대파했다. 내가 닭살이 돋은 것은 관창의 용맹 때문이 아니다. 처음 아버지가 관창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네가 비록 어리지만 의지와 기개가 있다. 오늘 공명을 세우고 부귀영화를 획득할 시기이니 어찌 용기가 없을쏘냐.” 부귀와 명성으로 꾀어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아버지라니, 이거야말로 가미카제 특공대 아닌가. 국민 귀요미 삼둥이가 일박이일 병영체험을 했다고 한다. 세 꼬마가 경례를 하거나 관등성명을 대는 장면이 귀엽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군대는 ‘적’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유지되는 곳이다. 4살 아이들에게 꼭 그걸 가르쳐야 했을까.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싶다고, 집에 가서 자야 한다고 눈물을 보이자 교관이 다그치는 장면도 방송을 탔다. 아이들이 배운 것은 남자다움이 아니라 공포다. 공포를 극복하면 군기가 든다. 군기가 바짝 들면 관창처럼 홀로 적진에 뛰어든다. 삼둥이 아버지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평했다고 한다. 나도 아비지만, 내가 본 것은 아이들이 자라서 접하게 될 끔찍한 미래였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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