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1.10 18:35
수정 : 2015.11.1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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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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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이유식을 시작했다. 드디어 식단이 다양해지고 있다. 첫째 주는 미음, 둘째 주는 호박, 셋째 주는 고구마와 브로콜리와 청경채, 넷째 주는 쇠고기와 양배추. 엄지손가락만한 숟가락으로 떠 넣어주면, 이걸 왜 이제야 주느냐는 듯 맛있게 받아먹는다. <복면가왕>을 너무 보았나? 아기의 머릿속에서, 누군가 복면을 쓰고 이렇게 소리치고 있을 것 같다. “일어나라, 미뢰여. 깨어라, 미각이여.” 아기가 입맛을 바꾼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모유에서 분유로 갈아탔을 때에는 아기 엄마가 제법 속상해했다. “어느 날부턴가 엄마 젖꼭지가 싫다고 용을 쓰며 우는 거야. 어찌나 섭섭하던지.” 젖병은 힘들여 빨지 않아도 금세 나온다. 아기에게도 3D 업종이 있다면 엄마 젖 빨기, 예방주사 맞기, 응가 뭉갠 채 버티기 정도가 될 것이다. “할 수 없이 유축해서 주었는데, 아기가 빨지 않으니까 차츰 젖이 마르더라고.” 그래도 이 시기는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시기일 뿐이다. 분유는 여전히 엄마 젖 대리니까. 하지만 이유식은 아니다. 이제 아빠도 숟가락만 들면 아기를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이유식에도 회자정리(會者定離)가 있다. 젖은 가고 죽이 온다. 그리고 죽이 가면 밥이 온다. 하나가 떠나면 하나가 도착한다. 하나가 도착하면 하나가 떠난다. 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상상할 수 없지만 언젠간 어머니가 떠나실 것이다. 그보다 먼저 어린 어머니가 이렇게 도착해 있다. 변치 않는 하나, 사랑이 여기에 있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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