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05 18:44
수정 : 2017.01.05 19:49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새해 벽두에 터진 송인서적의 부도 소식에 출판계와 서점계는 물론이고 뜻있는 독자들의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송인서적은 1959년 송인서림으로 설립되어 1998년 외환위기의 와중에 쓰러졌다 재기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현존하는 도매업체로는 가장 오랜 역사와 신뢰를 쌓아왔다.
송인서적은 2300개 출판사와 1000개 지역서점의 거래를 이어주는 도매업체다. 약 800개의 영세 출판사들은 송인서적과 도매유통 일원화를 했고, 이 가운데 50개 출판사는 서점과 직거래 없이 오로지 송인서적만 유일한 유통 창구로 이용했다. 또한 지역서점들 중에는 송인서적 한 곳과만 거래한 곳들도 상당수다. 무엇보다 대도시 외곽의 중소도시 중소서점들이 주요 거래처였다. 많이 팔리지 않아 회전이 느리지만 좋은 책을 가급적 많이 취급한다는 영업 방침도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송인서적의 부도로 인한 피해는 특히 소규모 출판사들과 지역서점들에게 클 수밖에 없다. 출판시장 악화로 근근이 경영하던 상당수 출판사들은 송인서적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고 결제가 중지되면서 출판사 살림은 물론, 지업사나 인쇄소 등 거래처에 줄 돈줄이 막혔다. 거래 서점들도 출판유통의 동맥경화로 당장의 도서 수급과 신학기 채비에 비상이 걸렸다. 서점에서 회수해 출판사에 지급해야 할 판매대금이나 서점이 보유중인 출판사들의 재고도서 처리 역시 쉽지 않다.
이제 송인서적의 회생 여부는 전적으로 채권단 결정에 달렸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업체 한 곳의 상황만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출판 도매업계와 출판시장 지형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단행본 도서를 기준으로 방방곡곡의 지역서점들과 거래하는 도매업체가 실질적으로 2개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 업체의 사업 철수는 사실상 도매시장의 독점화를 의미한다. 송인서적의 청산이냐 회생이냐가 아니라, 도매업계 독점화의 길을 업계가 만들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인 셈이다. 당장 수백 억원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회생은 관련업계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정부도 필요한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한다.
송인서적 이규영 대표는 “출판 도매업체들은 작은 시장을 두고 치킨게임을 벌여왔다”고 밝혔다. 2년 전 도서정가제 강화 이후 지역서점들의 도서관, 학교 납품 기회가 증가했지만 도매상의 대리납품 과정에서 벌어진 과도한 단가 경쟁이 경영난을 부른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번의 송인서적 사태는 단지 일개 회사의 경영 문제가 아니다. 외환위기 때나 4년 전 학원서적 및 수송사 폐업과도 상황이 다르다. 해방 이후 출판계 최대 과제이면서 여전히 풀지 못 하고 있는 출판유통의 현대화라는 큰 틀에서 어음 거래 관행을 없애고 유통구조를 개혁하는 적극적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규모도 작으면서 나만 살겠다고 늘려온 출판사-서점 직거래와 지역 총판 체제도 차제에 혁신되어야 한다. 각자도생이 아닌 ‘공생의 출판유통’이 화두가 되어야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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