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31 19:00
수정 : 2017.08.31 20:33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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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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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9월 ‘독서의 달’을 여는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전주 한옥마을에서 3일까지 개최된다. 4년 전 경기도 군포에서 시작해 인천, 강릉, 전주로 이어진 정부의 대표적인 독서 행사다. 올해 주제는 ‘사랑하는 힘, 질문하는 능력’이다. 장관이 된 도종환 시인이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많은 작가가 행사를 빛낸다. 전주만이 아니라 방방곡곡에서 수천 건의 행사가 9월을 수놓을 예정이다.
‘독서의 달’을 규정한 독서문화진흥법 제3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독서 진흥 책무를 명시했다. 여기에는 국민을 위한 독서환경 조성과 독서문화에서 소외되는 이가 없도록 나라가 나서야 한다는 ‘독서복지’의 철학이 담겼다. 이 법이 시행 1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독서 진흥’ 깃발이 펄럭였던 지난 10년간 독서 생태계는 오히려 쇠약해졌다. 성인 독서율(1년에 1권 이상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은 연평균 1%씩 줄고 가계 도서구입비는 10년간 40%나 줄었다. 출판은 고위험 사업이 되었다. 원인은 분명하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불안한 나라에서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여기에 스마트폰이 가세했고, 책이 싫어지게 만드는 교육정책이 거들었다. 이에 질세라 정권까지 나서서 독서정책을 훼손했다. 1번 타자로 등판한 이명박 정권은 각종 정부 위원회 정비 계획을 내세워 초대 ‘독서진흥위원회’를 없앴다. 2번 타자 박근혜 정권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정 출판사나 책과 관련된 단체를 정부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이제 3번 타자로 타석에 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개탄스러운 일들이 벌써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책 관련 단체들은 프랑스 문화부의 ‘도서?독서국’처럼 독서?출판?도서관 정책을 총괄하는 국 단위의 융합형 행정부서를 만들라고 요구했다. ‘독서진흥과’ 같은 전담 조직 신설을 전제로 한 것이다. 독일처럼 대통령 산하에 독서재단을 두는 모델도 차선책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존에 독서를 담당했던 인문정신문화과를 해체하고 출판인쇄산업과로 독서 업무를 이관시켰다. 10년 전 독서문화진흥법 제정 당시 독서 업무가 ‘출판산업팀’ 소관이던 퇴행적 상황으로 ‘리셋’된 것이다. 독서정책의 확장과 혁신을 포기한 것이다. 민간이 절실히 바라는 독서 진흥 전담 부서 하나 만들지 못하는 정부에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하나. 얼마 전 문재인 정부가 발표했던 국정운영 5개년계획을 아무리 뒤져도 책, 독서, 출판, 도서관이란 단어 하나 나오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식과 상상력의 젖줄인 책은 취미를 넘어선 생존 도구다. 정부는 국민의 생존권과 연결된 독서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 시작이 전담 부서 만들기다. 중앙정부가 실효성 있는 정책수단으로 정책과 비전을 만들지 않으면, 어릴 때 독서율은 높지만 연령 증가에 따른 독서율 하락이 가장 뚜렷한 나라(2013년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라는 불명예는 고치기 힘들 것이다. 생활 밀착형 독서정책으로 미래형 일자리를 만드는, ‘글월 문’(文)자 정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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