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선임기자 창춘(長春)의 옛 이름은 신경(新京), 만주국의 수도였다. 영화 <마지막 황제>로 잘 알려진 푸이(溥儀)가 일본 관동군 사령부의 감시 아래 꼭두각시 황제 노릇을 했던 그 만주국이다. 창춘 시내의 푸이 황궁은 위만황궁박물원이라는 이름의 역사·문화 유적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중국은 만주국 앞에 거짓 위(僞) 자를 붙여 ‘위만주국’이라 일컫는데, 푸이의 만주국이 주권 국가로서 구실을 하지 못한 허수아비였다는 뜻이 담겼다. 황궁 정문인 흥운문에 새겨진 두마리 용 조각은 용다운 위용은 전혀 없이 만화 주인공 같은 표정과 자태가 영락없이 꼭두각시 황제 푸이를 떠오르게 한다. 숙소인 쑹위안 호텔은 관동군 사령부 건물을 접수한 지린성 인민위원회 옆이었고, 관동군 사령관 관저가 호텔의 시설 일부로 쓰이고 있었다. 얼마 전 발간된 소설 <칼과 혀>(권정현 지음)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었다. 소설에서는 부부 사이인 중국인 요리사와 조선 여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본인인 관동군 사령관을 암살할 기회를 노린다. 이 소설 이전에도 창춘과 한국 문학의 관련은 밀접했다. 만주국에서 한국어로 발행되던 신문 <만선일보>에는 최남선이 고문으로, 염상섭은 편집국장으로, 그리고 안수길과 박팔양 등이 기자로 활동했으며 백석은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진오는 ‘신경’이라는 단편에서 창춘 특유의 기와를 얹은 다층 건물을 가리켜 “동양이 서양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의 한 나타남”이라 평가하는 한편, “일계(日系)와 만계(滿系)의 중간에 서서 선계(鮮系)의 지위는 복잡미묘한 것”이라는 관찰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만선일보>가 발행되고 <칼과 혀>의 이야기가 준비되던 1943년 이곳에서는 소설가 황석영이 태어났다. 소설 <칼과 혀>의 배경으로부터 70여년 뒤인 2017년 10월 셋째 주 그곳에서는 소설 속 이야기와는 사뭇 결을 달리하는 행사가 펼쳐졌다. 제11차 한·중작가회의. 한국과 중국 문인 40여명이 한데 모여 작품을 낭독하고 발표와 토론을 벌이는 자리였다. 2007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1차 행사를 시작으로 해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진행돼 왔다. 양국 문학 작품의 번역 출간 등 가시적 성과를 낳은 이 행사는 올해로 일단 마무리되고 내년부터는 취지와 방향은 계승하되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는 다른 행사로 나아갈 참이었다. 사드 배치에 이은 ‘한한령’으로 한국과 중국 사이의 교류와 협력에 된바람이 부는 가운데 매우 예외적으로 성사된 한·중작가회의는 그간 두나라 문인들이 쌓아 온 신뢰와 우의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번 한·중작가회의 기간은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기간과 겹쳐서 여느 행사들은 거의가 중단되거나 연기된 상황이었다. 쑹위안 호텔에서도 공산당 간부들이 강당에 모여 당대회 실황 중계를 단체로 시청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한·중작가회의는 작품 낭독과 토론 등 공식 일정 이후에는 인근의 역사·문화 유적을 답사하는 것이 관례였고 이번 지린성 행사 뒤에는 지안(集安)의 고구려 고분군을 둘러보고 압록강에서 배에 탄 채 북녘 땅을 건너다보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식 행사 뒤 중국 쪽은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며 고구려 고분군과 압록강 답사를 ‘불허’했다. 사드와 북한 핵실험이 한·중작가회의 같은 순수 문학 교류에도 그늘을 드리운 것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엄혹하다는 것, 문학이 결코 바깥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2017년 가을 창춘에서 새삼 확인했다. bong@hani.co.kr
칼럼 |
[최재봉의 문학으로] 2017 가을 창춘 |
책지성팀 선임기자 창춘(長春)의 옛 이름은 신경(新京), 만주국의 수도였다. 영화 <마지막 황제>로 잘 알려진 푸이(溥儀)가 일본 관동군 사령부의 감시 아래 꼭두각시 황제 노릇을 했던 그 만주국이다. 창춘 시내의 푸이 황궁은 위만황궁박물원이라는 이름의 역사·문화 유적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중국은 만주국 앞에 거짓 위(僞) 자를 붙여 ‘위만주국’이라 일컫는데, 푸이의 만주국이 주권 국가로서 구실을 하지 못한 허수아비였다는 뜻이 담겼다. 황궁 정문인 흥운문에 새겨진 두마리 용 조각은 용다운 위용은 전혀 없이 만화 주인공 같은 표정과 자태가 영락없이 꼭두각시 황제 푸이를 떠오르게 한다. 숙소인 쑹위안 호텔은 관동군 사령부 건물을 접수한 지린성 인민위원회 옆이었고, 관동군 사령관 관저가 호텔의 시설 일부로 쓰이고 있었다. 얼마 전 발간된 소설 <칼과 혀>(권정현 지음)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었다. 소설에서는 부부 사이인 중국인 요리사와 조선 여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일본인인 관동군 사령관을 암살할 기회를 노린다. 이 소설 이전에도 창춘과 한국 문학의 관련은 밀접했다. 만주국에서 한국어로 발행되던 신문 <만선일보>에는 최남선이 고문으로, 염상섭은 편집국장으로, 그리고 안수길과 박팔양 등이 기자로 활동했으며 백석은 평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진오는 ‘신경’이라는 단편에서 창춘 특유의 기와를 얹은 다층 건물을 가리켜 “동양이 서양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의 한 나타남”이라 평가하는 한편, “일계(日系)와 만계(滿系)의 중간에 서서 선계(鮮系)의 지위는 복잡미묘한 것”이라는 관찰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만선일보>가 발행되고 <칼과 혀>의 이야기가 준비되던 1943년 이곳에서는 소설가 황석영이 태어났다. 소설 <칼과 혀>의 배경으로부터 70여년 뒤인 2017년 10월 셋째 주 그곳에서는 소설 속 이야기와는 사뭇 결을 달리하는 행사가 펼쳐졌다. 제11차 한·중작가회의. 한국과 중국 문인 40여명이 한데 모여 작품을 낭독하고 발표와 토론을 벌이는 자리였다. 2007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1차 행사를 시작으로 해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진행돼 왔다. 양국 문학 작품의 번역 출간 등 가시적 성과를 낳은 이 행사는 올해로 일단 마무리되고 내년부터는 취지와 방향은 계승하되 형태와 방식을 달리하는 다른 행사로 나아갈 참이었다. 사드 배치에 이은 ‘한한령’으로 한국과 중국 사이의 교류와 협력에 된바람이 부는 가운데 매우 예외적으로 성사된 한·중작가회의는 그간 두나라 문인들이 쌓아 온 신뢰와 우의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번 한·중작가회의 기간은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기간과 겹쳐서 여느 행사들은 거의가 중단되거나 연기된 상황이었다. 쑹위안 호텔에서도 공산당 간부들이 강당에 모여 당대회 실황 중계를 단체로 시청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한·중작가회의는 작품 낭독과 토론 등 공식 일정 이후에는 인근의 역사·문화 유적을 답사하는 것이 관례였고 이번 지린성 행사 뒤에는 지안(集安)의 고구려 고분군을 둘러보고 압록강에서 배에 탄 채 북녘 땅을 건너다보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식 행사 뒤 중국 쪽은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며 고구려 고분군과 압록강 답사를 ‘불허’했다. 사드와 북한 핵실험이 한·중작가회의 같은 순수 문학 교류에도 그늘을 드리운 것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엄혹하다는 것, 문학이 결코 바깥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2017년 가을 창춘에서 새삼 확인했다. bong@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