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선임기자 김수영 전집 ‘결정판’이 나온다는 소식이다. 시와 산문 두권으로 된 김수영 전집은 1981년 민음사에서 첫선을 보였고 2003년에 개정판이 출간된 바 있다. 개정판 당시에도 시 ‘아침의 유혹’과 ‘판문점의 감상’, 그리고 ‘이 거룩한 속물들’, ‘들어라 양키들아’, ‘참여시의 정리’ 같은 산문들이 추가되었는데, 김수영 타계 50주년(6월16일)을 앞두고 다음주에 나오는 결정판에는 그 뒤 새롭게 확인한 미발표 및 미발굴 시들과 포로수용소 시절을 회고한 글을 비롯한 산문과 일기, 편지 수십편이 다시 추가될 것이라 한다. 결정판에 새롭게 포함될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시 ‘김일성 만세’일 것이다. 2008년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발굴해 <창작과비평>에 처음 공개한 작품이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로 시작된다. 이 시는 2008년에 처음 확인되었지만, 이 작품을 써서 잡지사에 보냈다가 결국 싣지 못한 1960년 10월의 일기는 기왕의 김수영 산문 전집에도 들어 있다. ‘잠꼬대’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서 부인에게 보였더니 걱정하더라는 내용, 자신이 처음 생각한 제목은 ‘○○○○○’이며 시집을 낼 때는 이 제목으로 하고 싶다는 것, 그러나 결국 잡지사에서도 손사래를 치고 “지금 같아서는 시집에 넣을 가망도 없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1960년 10월6일부터 10월29일까지 이어진다. 일기에서도 복자(伏字) 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다섯 글자 제목이 바로 ‘김일성 만세’라는 사실을 지금 우리는 알고 있다. 일기에서 김수영은 “이 작품은 단순히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이라고 밝힌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유명한 시에도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가 나오거니와, 특히 김수영의 산문 전집은 언론자유를 향한 피맺힌 절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도 도저히 있을 수 없다”(‘창작 자유의 조건’)거나 “자유가 없는 곳에 무슨 시가 있는가!”(‘자유의 회복’)라는 말들에서 보듯 김수영에게 언론자유는 시와 문학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었다. ‘김일성 만세’에서 극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바, 김수영이 보기에 분단국가 한국에서 언론자유의 핵심은 ‘38선’으로 상징되는 이념적 금기를 넘어서는 데에 있다. “나는 아직도 글을 쓸 때면 무슨 38선 같은 선이 눈앞을 알찐거린다”(‘히프레스 문학론’), “우리의 38선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빙산의 하나다. 이 강파른 철덩어리를 녹이려면 얼마만한 깊은 사랑의 불의 조용한 침잠이 필요한가”(‘해동’) 같은 문장들을 보라. 특히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 김수영이 숨지기 불과 넉달 전인 1968년 2월의 글인 ‘해동’에서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대표시로 꼽히는 ‘풀’을 떠올리는 마음은 반갑고도 안타깝다. “제일 먼저 녹는 얼음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철이고 싶다. 제일 먼저 녹는 철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얼음이고 싶다.” 김수영이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녹이고 싶어 했던 ‘38선’이란 지금도 안보 장사꾼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빨갱이 딱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시와 산문을 통해 언론자유를 피 터지게 외쳤던 때로부터 어언 반세기. 우리는 아직도 ‘김수영 이전’에 있는 것이 아닐까. bong@hani.co.kr
칼럼 |
[최재봉의 문학으로] 김수영은 살아 있다 |
책지성팀 선임기자 김수영 전집 ‘결정판’이 나온다는 소식이다. 시와 산문 두권으로 된 김수영 전집은 1981년 민음사에서 첫선을 보였고 2003년에 개정판이 출간된 바 있다. 개정판 당시에도 시 ‘아침의 유혹’과 ‘판문점의 감상’, 그리고 ‘이 거룩한 속물들’, ‘들어라 양키들아’, ‘참여시의 정리’ 같은 산문들이 추가되었는데, 김수영 타계 50주년(6월16일)을 앞두고 다음주에 나오는 결정판에는 그 뒤 새롭게 확인한 미발표 및 미발굴 시들과 포로수용소 시절을 회고한 글을 비롯한 산문과 일기, 편지 수십편이 다시 추가될 것이라 한다. 결정판에 새롭게 포함될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시 ‘김일성 만세’일 것이다. 2008년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발굴해 <창작과비평>에 처음 공개한 작품이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로 시작된다. 이 시는 2008년에 처음 확인되었지만, 이 작품을 써서 잡지사에 보냈다가 결국 싣지 못한 1960년 10월의 일기는 기왕의 김수영 산문 전집에도 들어 있다. ‘잠꼬대’라는 제목으로 시를 써서 부인에게 보였더니 걱정하더라는 내용, 자신이 처음 생각한 제목은 ‘○○○○○’이며 시집을 낼 때는 이 제목으로 하고 싶다는 것, 그러나 결국 잡지사에서도 손사래를 치고 “지금 같아서는 시집에 넣을 가망도 없다고 한다”는 이야기가 1960년 10월6일부터 10월29일까지 이어진다. 일기에서도 복자(伏字) 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다섯 글자 제목이 바로 ‘김일성 만세’라는 사실을 지금 우리는 알고 있다. 일기에서 김수영은 “이 작품은 단순히 ‘언론자유’에 대한 고발장”이라고 밝힌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유명한 시에도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가 나오거니와, 특히 김수영의 산문 전집은 언론자유를 향한 피맺힌 절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중간사도 도저히 있을 수 없다”(‘창작 자유의 조건’)거나 “자유가 없는 곳에 무슨 시가 있는가!”(‘자유의 회복’)라는 말들에서 보듯 김수영에게 언론자유는 시와 문학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었다. ‘김일성 만세’에서 극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바, 김수영이 보기에 분단국가 한국에서 언론자유의 핵심은 ‘38선’으로 상징되는 이념적 금기를 넘어서는 데에 있다. “나는 아직도 글을 쓸 때면 무슨 38선 같은 선이 눈앞을 알찐거린다”(‘히프레스 문학론’), “우리의 38선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빙산의 하나다. 이 강파른 철덩어리를 녹이려면 얼마만한 깊은 사랑의 불의 조용한 침잠이 필요한가”(‘해동’) 같은 문장들을 보라. 특히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 김수영이 숨지기 불과 넉달 전인 1968년 2월의 글인 ‘해동’에서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대표시로 꼽히는 ‘풀’을 떠올리는 마음은 반갑고도 안타깝다. “제일 먼저 녹는 얼음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철이고 싶다. 제일 먼저 녹는 철이고 싶고,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얼음이고 싶다.” 김수영이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녹이고 싶어 했던 ‘38선’이란 지금도 안보 장사꾼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빨갱이 딱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시와 산문을 통해 언론자유를 피 터지게 외쳤던 때로부터 어언 반세기. 우리는 아직도 ‘김수영 이전’에 있는 것이 아닐까. bong@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