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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9 17:57 수정 : 2018.08.10 13:44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베스트셀러의 인세가 오로지 해당 작가에게만 독점되는 것은 정당하기만 한가?”

이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이는 문학평론가인 한만수 동국대 교수. 한국작가회의가 발행하는 반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 2018년 하반기호에 기고한 ‘‘탕진’에서 독점으로… 이제 문학적 공유경제를 꿈꾸자’라는 글에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근대 문학 초창기만 하더라도 작가들은 원고료를 받는 데 대해 일쑤 부끄러움을 토로하고는 했다. ‘매문’(賣文)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 돈을 받는 일이 어쩐지 떳떳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졌던 것이다(글쓰기란, 그리고 문학이란 돈과 무관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고결한 행위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원고료를 현금으로 받으면 동료 문인들을 불러 술을 사서 그날로 거의 다 써버리는 식의 관행이 그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도, 원고료까지는 아니지만, 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상금 일부를 뒤풀이 술값으로 쓰거나 책이 나오면 출판기념회를 열어 동료들에게 술을 사는 게 일반적인데, 이 역시 그런 ‘탕진’의 흔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한 교수는 문인 사회 특유의 이런 습속을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증여 의식 포틀래치에 빗대어 해석하면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제언한다. 이 글 앞머리에서 인용한 대로,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인세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근대적 출판 시스템 아래에서 책 정가의 10퍼센트 안팎을 작가 몫으로 돌리는 것은 창작자의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그 ‘10퍼센트’가 온전히 작가의 몫이기만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한 교수는 제기하는 것. 그는 베스트셀러의 탄생에는 작가의 재능과 노력 말고도 다른 요소들이 작용한다고 본다. 해당 책을 낸 출판사가 축적해놓은 상징자본과 경제자본은 물론이고, 한국문학이 근대화 과정에서 기여한 몫에 대한 사회적 인정, 의무교육을 통한 문학 독서 체험, 그리고 선배 작가 세대에서부터 개발 및 전승돼온 글쓰기의 기술적 역량 등이 두루 합쳐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베스트셀러 인세 수입을 작가가 독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 한 교수의 ‘발칙한’ 생각이다. 특히 문단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한 터에, 베스트셀러의 탄생에 투입된 ‘공유몫’은 가난한 문인들에게 돌아가는 게 타당하다는 것.

한 교수가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희생과 양보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 역시, 아니 출판사야말로 베스트셀러 탄생에 따른 배타적 수익을 나누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고 글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요 문학 출판사들이, 역량은 있지만 상업성은 떨어지는 신진 작가들에게 기본소득에 해당하는 지원을 하는 것”을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문학과 출판 역시 자본주의 상업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문학은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겠나 하는 판단에서라고 했다.

“죽을 때나마 한번 머리 옆에다 원고용지를 수북이 놓아보고 싶”노라던 채만식, 닭 삼십마리와 구렁이 십여뭇을 먹고 결핵을 고쳐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문우 안회남에게 보냈던 김유정…. 이런 옛 문인들만이 아니다. 지금도 소수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 돈과 명예가 쏠리는 한편에서는 문학에 대한 열정 하나로 가난에 맞서는 작가들의 존재가 엄연하다. 그들이 좌절해서 뜻을 꺾거나 스러지지 않도록, 문인 기본소득과 문학적 공유경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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