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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4 19:47 수정 : 2018.10.05 11:32

최재봉

영어 학습서 중 특히 어휘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 교재로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Word Power Made Easy)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있다. 영어 어휘 태반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는 데에 착안한 책이다. 단어를 무작정 외우는 게 아니라 어원을 먼저 파악하고 그로부터 단어의 뜻을 유추하도록 함으로써 어휘력을 급상승시킨다는 게 이 책의 취지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에 이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반드시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들 또한 때로 어떤 낱말의 어원을 궁금해한 적이 있지 않을까. 가령 해, 땅, 어머니·아버지, 강아지, 아침… 이런 말들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어원을 설명한 책 몇권을 들여다보았다.

<조선말 단어의 유래>(렴종률 지음, 금성청년종합출판사, 2001)와 <어원 유래 상식>(김인호 지음, 사회과학출판사, 1권 2005년, 2권 2009년). 남북 사이의 왕래가 활발하던 무렵 평양에서 산 북한 책들이다. <조선말 단어의 유래>는 ‘가대기’에서 ‘애달프다’까지 사전처럼 낱말들의 어원과 유래를 설명했고, <어원 유래 상식>은 사람·의식주, 농작물·동식물, 정신·행동, 자연·시간 등 주제별로 낱말을 고르고 어원 및 유래를 풀이했다는 점에서 편제에 차이가 있다.

비록 표기와 문법, 뜻풀이 등에서 이질성이 없지 않지만, 남북은 같은 말과 글을 쓰는 언어 공동체다. 북한에서 발행한 책들로도 한국어 어원에 관한 궁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아침’은 에서 을 거쳐 지금의 형태가 되었는데, “처음 때”라는 뜻이다. ‘아시’ 또는 ‘아사’는 “처음, 시초, 작은 것”이라는 뜻으로 ‘아사달’ ‘아이’ ‘아예’ 같은 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은 “때, 무렵”의 뜻으로 “이참에” “막 나가려던 참인데”처럼 지금도 쓰인다. “맞는 때”를 가리키는 ‘마침’이라는 말은, ‘아침’과 함께, ‘침’이 의 변형태로 시간을 가리킴을 알게 한다.

“동그란 곡식”이란 뜻에서 ‘고히’로 출발했던 낱말은 ‘코히’를 거쳐 지금의 ‘콩’으로 정착했다. ‘히’가 ‘ㅇ’으로 바뀌는 작용 때문이다. “크다”는 뜻을 지닌 ‘다/따(히)’가 ‘땅’으로, ‘가히아지’가 ‘강아지’로, ‘구미히’가 ‘구멍’으로 바뀐 것도 같은 이치. ‘황소’와 ‘황새’는 한자 누를 황(黃)과는 무관하며, “크다”는 뜻의 ‘한소’와 ‘한새’가 어음변화(음운변화)를 거친 결과다.

두 책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언니’라는 말을 두고 한쪽은 ‘어느 님’에서 왔다고 추정하고 다른 쪽은 “시집간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어른이’가 준 것이라 푸는가 하면, ‘꾀꼬리’는 “꽃”과 “꼬리”가 합쳐진 ‘곳고리’의 변형이라는 설과 “꾀꼴꾀꼴” 우는 소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는 설이 맞서기도 한다. ‘설렁탕’의 어원이 ‘선농단’(先農壇)도 ‘설농탕’(雪濃湯)도 아니고 “여러가지 국거리들을 오랜 기간 설렁설렁 끓인 탕”이라는 설명도 있다.

사실 어원 찾기란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확인한다기보다는 추론을 통해 최대한 그럴듯한 설명에 다가가는 작업에 가깝다.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정 사물이나 동작, 느낌과 상태를 가리키는 말들을 통해 그 말을 처음 만든 옛사람들의 마음자리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며칠 뒤면 572돌 한글날이다.

책지성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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