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선임기자 지난해가 김수영의 50주기였다면 올해(4월7일)는 신동엽 시인이 50주기를 맞는 해다. 한국 현대시의 참여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시인은 1968년과 1969년에 차례로 세상을 떴다. 사고로 죽은 김수영은 마흔여덟이었고 병에 스러진 신동엽은 세는나이로 가까스로 마흔을 채웠다. 둘 다 요절이라고 해도 무방할 아까운 나이였다. 김수영은 1960년대에 시 비평을 활발히 했는데, 그 가운데 신동엽과 그의 작품을 거론한 대목이 제법 있다. 1964년에 쓴 글 ‘생활현실과 시’에는 “평론을 쓰는 신동엽”과 만나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언급도 있다. 여기서 신동엽은 ‘우리나라의 시는 지게꾼이 느끼는 절박한 현실을 대변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소개된다. 다른 글에서는 “(시인으로서) 신동엽을 알게 된 것은 극히 최근에 ‘발’이라는 그의 작품을 읽고 난 뒤”라고 썼는데, ‘발’은 <현대문학> 1966년 3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신동엽의 시로는 이밖에도 ‘아니오’ ‘껍데기는 가라’ ‘원추리’ ‘3월’ ‘산에도 분수’ ‘우리가 본 하늘’ 등을 언급했다. 신동엽의 대표작 중 하나인 ‘껍데기는 가라’에 대해 김수영은 이례적으로 극찬을 했다. “그의 카랑카랑한 여무진 저음에는 대가의 기품이 서려 있다” “어떤 민족의 정신적 박명(薄明) 같은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 미래에의 비전과의 연관성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시로서 거의 완벽한 페이스” 같은 후한 평이 이어진다. “소월의 민요조에 육사의 절규를 삽입한 것 같”다는 게 이 작품을 비롯한 신동엽 시에 대한 김수영의 총평인데, 그러면서도 일말의 우려를 덧붙인다. “그가 쇼비니즘으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것으로, 그와 관련해 “그는 50년대에 모더니즘의 해독을 너무 안 받은 사람 중의 하나”라고 지적하는 것이 역시 김수영답다. 김수영과 신동엽은 같은 참여 및 진보라 해도 시 경향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서구 모더니즘 미학의 세례를 받은 김수영이 시민적 자유라는 주제를 천착했다면, 신동엽은 동양 고전과 전통 서정의 영향 아래 분단 문제를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 이들이 한창나이에 겪은 4·19는 두 시인의 삶과 시에 두루 큰 영향을 끼쳤다. 김수영의 4·19 시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껍데기는 가라’를 비롯해 ‘사월은 갈아엎는 달’ ‘산에 언덕에’ 같은 신동엽 시들 역시 4·19의 영광과 좌절, 목표와 과제를 적극적으로 노래한다. 특히 ‘껍데기는 가라’는 4·19 혁명을 동학농민전쟁에서 미래의 통일 조국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흐름 위에 놓음으로써 시인의 역사의식과 문학적 전망을 집약한 작품이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마지막 연) “그 모오든 쇠붙이”는 ‘껍데기는 가라’를 선보인 이듬해인 1968년에 발표한 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에도 나온다. 두 작품 모두에서 쇠붙이는 한반도의 허리를 동강 내고 옥죄는 분단의 질곡을 상징한다. 그런데 시인은 분단의 아픔을 토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분단 현실을 ‘활용’해 그를 넘어서려는 적극적인 상상력을 보인다.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중립화·평화화하고 그것을 한반도 전체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 (…) // 중립지대가/ 점점 팽창되는데,/ 그 평화지대 양쪽에서/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던/ 탱크들이 일백팔십도 뒤로 돌데.”(‘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부분) 비록 시인은 이런 상상을 술 탓으로 돌리며 “허망하게 우스운 꿈”이라 폄하하지만, 그것이 단지 허망한 꿈으로만 그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꿈을 넘겨받기라도 한 양 문익환 목사는 1989년 벽두에 쓴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라 다짐했고, 그 다짐대로 그해 3월25일 북으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올해는 문익환 목사와 소설가 황석영 등이 북한을 방문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시인의 꿈이란 허망하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bong@hani.co.kr
칼럼 |
[최재봉의 문학으로] 신동엽의 꿈 |
책지성팀 선임기자 지난해가 김수영의 50주기였다면 올해(4월7일)는 신동엽 시인이 50주기를 맞는 해다. 한국 현대시의 참여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시인은 1968년과 1969년에 차례로 세상을 떴다. 사고로 죽은 김수영은 마흔여덟이었고 병에 스러진 신동엽은 세는나이로 가까스로 마흔을 채웠다. 둘 다 요절이라고 해도 무방할 아까운 나이였다. 김수영은 1960년대에 시 비평을 활발히 했는데, 그 가운데 신동엽과 그의 작품을 거론한 대목이 제법 있다. 1964년에 쓴 글 ‘생활현실과 시’에는 “평론을 쓰는 신동엽”과 만나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언급도 있다. 여기서 신동엽은 ‘우리나라의 시는 지게꾼이 느끼는 절박한 현실을 대변해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소개된다. 다른 글에서는 “(시인으로서) 신동엽을 알게 된 것은 극히 최근에 ‘발’이라는 그의 작품을 읽고 난 뒤”라고 썼는데, ‘발’은 <현대문학> 1966년 3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신동엽의 시로는 이밖에도 ‘아니오’ ‘껍데기는 가라’ ‘원추리’ ‘3월’ ‘산에도 분수’ ‘우리가 본 하늘’ 등을 언급했다. 신동엽의 대표작 중 하나인 ‘껍데기는 가라’에 대해 김수영은 이례적으로 극찬을 했다. “그의 카랑카랑한 여무진 저음에는 대가의 기품이 서려 있다” “어떤 민족의 정신적 박명(薄明) 같은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 미래에의 비전과의 연관성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시로서 거의 완벽한 페이스” 같은 후한 평이 이어진다. “소월의 민요조에 육사의 절규를 삽입한 것 같”다는 게 이 작품을 비롯한 신동엽 시에 대한 김수영의 총평인데, 그러면서도 일말의 우려를 덧붙인다. “그가 쇼비니즘으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것으로, 그와 관련해 “그는 50년대에 모더니즘의 해독을 너무 안 받은 사람 중의 하나”라고 지적하는 것이 역시 김수영답다. 김수영과 신동엽은 같은 참여 및 진보라 해도 시 경향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서구 모더니즘 미학의 세례를 받은 김수영이 시민적 자유라는 주제를 천착했다면, 신동엽은 동양 고전과 전통 서정의 영향 아래 분단 문제를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 이들이 한창나이에 겪은 4·19는 두 시인의 삶과 시에 두루 큰 영향을 끼쳤다. 김수영의 4·19 시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껍데기는 가라’를 비롯해 ‘사월은 갈아엎는 달’ ‘산에 언덕에’ 같은 신동엽 시들 역시 4·19의 영광과 좌절, 목표와 과제를 적극적으로 노래한다. 특히 ‘껍데기는 가라’는 4·19 혁명을 동학농민전쟁에서 미래의 통일 조국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흐름 위에 놓음으로써 시인의 역사의식과 문학적 전망을 집약한 작품이다.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마지막 연) “그 모오든 쇠붙이”는 ‘껍데기는 가라’를 선보인 이듬해인 1968년에 발표한 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에도 나온다. 두 작품 모두에서 쇠붙이는 한반도의 허리를 동강 내고 옥죄는 분단의 질곡을 상징한다. 그런데 시인은 분단의 아픔을 토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분단 현실을 ‘활용’해 그를 넘어서려는 적극적인 상상력을 보인다.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중립화·평화화하고 그것을 한반도 전체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 (…) // 중립지대가/ 점점 팽창되는데,/ 그 평화지대 양쪽에서/ 총부리 마주 겨누고 있던/ 탱크들이 일백팔십도 뒤로 돌데.”(‘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부분) 비록 시인은 이런 상상을 술 탓으로 돌리며 “허망하게 우스운 꿈”이라 폄하하지만, 그것이 단지 허망한 꿈으로만 그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꿈을 넘겨받기라도 한 양 문익환 목사는 1989년 벽두에 쓴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라 다짐했고, 그 다짐대로 그해 3월25일 북으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올해는 문익환 목사와 소설가 황석영 등이 북한을 방문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시인의 꿈이란 허망하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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