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고 한 이는 함석헌이다. 그 말이 나온 책 이름은 ‘뜻으로 본 한국 역사’다. 뜻밖에도 ‘도둑같이’는 정작 다음 문장을 붙잡고 있다. ‘해방을 도둑해 가려는 놈들이 참 많다.’ 함석헌의 눈에 도둑같이 온 것보다 위험한 것은 도둑질당하는 해방이었다. 누구에겐가 해방은 장물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사적 이익을 공동체의 이익인 양 둔갑시키는 데 탁월한 솜씨를 지닌 자들이었다. 일제 치하가 이백년은 갈 줄 알았다고 정직하게 고백한 건 서정주다. 이인직, 이광수, 최남선과 더불어 그는 친일의 정서적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서정주의 언설은 해방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간명하게 응축하고 있다. 그네들에게 광복은 오지 말았어야 할 것이되 와야 하는 분열적 이중 모순이었다. 함석헌은 옳았고, 그것은 역사의 비극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도둑과 장물아비들이 해방, 광복, 독립을 독점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광복이라는 빛을 뿜어내야 하는 잔치는 사라졌다. 해방과 함께 수행되었어야 하는 동족 억압자에 대한 징치 또한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분단체제로 귀착하고 만 독립은 광복을 암전시키더니 마침내 처형해버렸다. 근대의 시민, 곧 생동하는 주권자로 재탄생해야 마땅했던 각인 또는 개인은 거대한 폭력으로 닥쳐온 냉전체제에 적응해야 하는 초라한 대상으로 문득 전락해 있었다. 적어도 1945년 그날 이후 한국인에게 ‘나의 광복’은 없었다. 공간은 해방되었지만 강토는 남북으로 끊어졌고 연표로서 일제강점기는 끝났지만 역사의 주체인 시민과 개인은 광복 이념 안팎에 존재한 흔적이 없다. 지난 70년 동안 개인은 신문과 라디오, 티브이로 광복절 행사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일 뿐이었다. 주권자는 냉전 권력의 교육 대상이거나 행사에 동원되는 나부랭이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광복에 대한 방관자를 양산하는 산실이기도 했다. 역사의 용광로로서 광복은 어디로 갔을까. 하물며 광장에서 태어난 4·19에서마저 광장은 거세되었다는 말로 답을 대신할 수 있다. 신발을 벗고 실내로 들어간 혁명은 이를 뭉개버린 쿠데타 세력이 주도하는 기념식만 생중계되었다. 현행 헌법 전문에 빛나는 해방과 혁명이 이토록 정적인 경우는 지상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광복은 진작에 다시 광복되었어야 했다. 어제로써 멈춰 있는 광복은 낡은 광복이다. 지나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 어제 내리던 빛으로 들을 먹여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살아있는 역사는 지금 그 순간의 역사라야 한다. 이 시제의 불일치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역사를 배우고 익히게 하는 동력이다. 광복 이후 출생한 인구가 9할이 넘는 마당에 재창조되지 않는 광복은 점점 더 행정용어로만 유통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주의)적 선별 기억만을 반복 주입해온 관료적 광복을 티브이 밖으로 끄집어내 시민문화적 맥락과 접목시키는 일은 광복을 현재화하는 핵심과정이다. 역사는 문화와 만났을 때 비로소 시가 되고 노래가 될 수 있다. 감격이 없는 광복은 심장이 없는 연애와도 같다.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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