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사회적 호흡기 질병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 사회를 내습했다. 표현의 자유와 불통의 시대를 뚫고 메르스 바이러스만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는 참이다. 세월호 사태를 포함한 고통에 대한 외면과 생존이란 이름으로 동의해온 침묵의 기생처를 급습하면서 거대한 통증이 한국을 총체적으로 쓸어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위생사회를 내면 깊숙이 휘젓고 초토화하면서 문명을 맘껏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철의 권력이 유동하고 있다. 위생권력은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국가방역체계나 민영화 운운하면서 주권자의 아픈 몸을 돈으로 셈하고 있던 상업의료자본의 상징 또한 명백히 무력한 채로 바이러스 사이를 표류하고 있다. 근대국가의 핵심 위계가 붕괴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흔히 유체이탈이라 부르는 국가 위의 권세로 군림하고 있는 신성불가침의 무균권력이 낳은 단정컨대 역병시대다. 비판을 허용치 않는 무모순, 무균성 자체가 이미 정치적으로 심각한 질병 상태를 뜻한다. 전염병이 숙주로 삼고 있는 거처는 한낱 병동이나 번호로 호명되면서 인격이 망실되어버린 몇몇 환자의 육체라기보다는 정치적 무능이다. 애초에 현 권력은 민주정체에 쉬를 슬면서 탄생했다. 그 권력의 관리 아래 있는 방역 둑이 무너진 건 단지 역학체계적 문제만은 아니다. 대중의 통증을 자기 아픔으로 치환하지 못하는 무통증의 통치세력 방역체계가 유능치 않은 건 도리어 순리에 가깝다. 게다가 피부병을 핑계로 병역을 면한 사람을 최고 권력의 대리 집행자로 앉히고 있다. 한마디로 방어력도, 면역력도 부재한 권력이다. 그 배후를 서성거리고 있는 바이러스는 탄저균이다. 놀랍게도 메르스와 탄저균은 평택이라는 한동네에서 문득 출현했다. 보존, 관리 자체가 반인륜적 행위로 간주되는 주한미군의 탄저균 실험에 대해 현 권력은 주권국가로서 대중이 안심할 만한 어떤 조처도 없었다. 이 또한 무능 바이러스 한 종을 추가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오늘 대중이 앓고 있는 것은 이 다기한 양태의 병균들이 합성하여 창출, 분사시키고 있는 공포 바이러스다. 세월호 이후 대중의 틈새를 메우고 있는 사회적 질료는 사회안전체계에 대한 공적 불신이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모두 보균자가 되었다. 공포라는 유동하는 이 비정형적 바이러스를 대응하는 시각적 증거물이 마스크다. 늘어나고 있는 마스크 숫자는 국가 역할에 대한 불신의 크기와 비례한다. 모든 바이러스는 사회적이고 또 정치적이다. 전염성이 있다는 것으로 벌써 이를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흑사병은 중세 천년을 끝장냈다. 귀족과 사제 등 역병에 무능한 지배계급은 안전지대로 도망쳤고 무력한 대중은 유대인, 집시, 그리고 말 많은 여자 같은 더 낮은 약자를 찾아 처형하면서 역병 공포를 해소하고자 했다. 흑사병으로 찢긴 그 상처 사이를 뚫고 나온 게 근대 공중보건권력이다.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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