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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3 21:26 수정 : 2016.05.13 21:26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안산순례길을 걷는다. 안산순례길은 6시간 동안 안산이라는 도시를 순례하며 내 몸의 감각으로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를 사유하고 실천하려는 예술행동이다. 순례라는 오래된 문화적 형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순례라는 행위는 스포츠가 아니고, 트레킹이 아니며, 관광은 더욱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순례의 달인인 인도 사상가 비노바 바베는 순례란 “땅에 접촉하는 면이 적을수록 하늘과 더 많이 접촉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416 이후 순례는 구도자들이 걷는 행선(行禪)의 순례는 아니다. 우리들의 순례는 사건 이후의 사건을 생각하며 걷는 순례여야 한다. 지난해에 이어 총연출을 맡은 윤한솔은 “안산순례길은 무의미함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개인들의 연대”라고 정의한다. 무브먼트당당, 그린피그, 다이애나밴드, 이양구×백우람, 제로랩, 청개구리제작소, 심보선, 유목연, 고주영, 다다 준노스케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순례 과정에서 재난 이후 ‘나는 예술가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실존적으로 고민하는 과정 자체를 펼쳐놓는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세월호 검열을 거치며 한 사람의 예술가-시민으로서 ‘망각을 깨는 웅성임’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예술 퍼포먼스를 통해 보여준다.

올해 안산순례길은 희생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개별성과 디테일에 주목하고자 한다. 희생자 일반으로 환원되지 않는 아이들의 ‘사연’을 청취하며 개별성을 드러낸다. 이영만, 임세희, 허다윤, 박성호, 오준영, 김시연……, 희생 학생 여섯 명의 일상 공간을 유족들과 함께 거닐며 ‘아이들의 길’을 개척했다. 그런데 참여자들은 순례가 끝난 뒤에야 봉인된 팸플릿을 열고 우리가 지나온 길이 여섯 명 아이들의 길이었음을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 한도병원, 선부동 다이아몬드상가, 화랑유원지 내 고잔바위, 안산시청 일대, 재개발 광풍이 부는 고잔동 빌라단지, 그리고 존치 논란이 된 단원고 교실의 의미가 새로운 차원으로 육박해 온다. 화랑유원지 내 고잔바위에서 진행된 퍼포먼스가 왜 깊은 울림을 주었는지 뒤늦게 알 수 있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거나 아이를 낳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던 고잔바위는 미수습자인 허다윤 양의 길이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안산순례길은 판소리 <심청가>를 거리에서 구현하는 일종의 판굿 형식을 취한다. 대동서적에서 진행된 플래시몹 퍼포먼스는 순례길의 정점이었다. 김동춘, 한나 아렌트, 오에 겐자부로 등이 쓴 십여 종의 책을 처음에는 천천히, 나중에는 샤우팅하듯 격렬히 낭독하는 장면에서 ‘오열’하는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의 무력을 넘어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참여 예술가들의 작은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건 이후 새로운 사건을 낳는 예술 프로젝트로서 안산순례길이 갖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안산역에서 출발한 순례단의 발걸음은 종착지인 안산중앙도서관 광장에서 멈춘다. 심 봉사가 마침내 눈을 활짝 뜨며 연꽃에서 환생한 딸과 상봉하는 모습을 확인하며. 재난의 진실에 눈을 떠야 한다는 개안(開眼)적 상상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안산순례단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합동분향소 앞 최정화의 설치작품 <검은 연꽃>이 아름다운 연꽃으로 바뀔 때까지. 나는 걷는다, 우리가 함께 걷는다. 우리가 함께 걸어가면 길이 열린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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