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27 18:49
수정 : 2016.05.27 21:49
봄은, 언제나 5월27일까지만 봄이다. 그리하여 5월은 이제사 끝났다. 여름은 정확하게 6월10일날에 시작한다. 계절을 쇠는 순환적 관습과 사회심리적 시간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해 5월은, 27일에 끝났다. 윤상원과 그의 벗들이 남도 도청에서 항전 끝에 사살되면서. 새벽 뜨락에서는 감꽃이 지고 있었다. 아까시꽃으로 피어난 5월은 감꽃으로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6월10일에야 비로소 여름이 시작하는 건 거기 격발하는 시간이 장전되어 있는 터다. 6·10 항쟁. 5월27일과 6월10일 사이에는 굳이 계절이 없었다. 1980년대 내내, 그 시간은 죽어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죄로. 그리하여 살아 있었다. ‘산 자여, 따르라'는 격동하는 가락을 타고 넘나드는 봉기로. 6월은 7년 열사나흘이 걸려서 가까스로 도착했다. 1987년 6월10일 정오 서울시청 앞 광장에. 에릭 홉스봄의 언설구조를 빌리자면 ‘장기 5월'이었다. 그날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장기 유신'이 끝나고 새 헌법 첫 줄이 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그해 5월은 유난히 더웠다. 1천9백5십년 6월을 낀 여름이 가장 긴 여름이었듯. 5월은 비닐로 칭칭 감은 살점이 썩어가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날마다 죽어나가는 제 육신을 담을 관짝마저 5월은 부족했다. 27일은 너무 빠르게 왔고 또 너무 더디 왔다. 그 5월 열흘 동안에 시간은 일종의 액체였다. 비가 나흘을 뿌려서만은 아니었다. 시계는 흐렸다. 구름이 자주 끼어서만도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트럭에 실려 도청 앞을 떠나 망월동 묘지로 실려가면서도 5월은 이별이 없었다. 그것은 긴 5월의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기억하듯 그 5월은 정말 더웠던 것일까. 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지역 평균기온은 23.6였고 20일은 17.5로 내려가더니 24일은 26.8로 가장 높았다. 열흘 동안 강수량은 56.3㎜였다. 정작 평년보다 기온이 조금 낮다 싶은 날들이었다. 봄이 끝나는 마지막 날인 27일 공수부대가 진입해 오던 새벽 4시는 가을인 양 수은주가 떨어져 10 아래였다. 섭씨 8도. 그래도 5월은 더웠다. 그 새벽이 쌀쌀했다고 기억하는 이는 여적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역사와 인간의 계절이다.
집단학살의 좌표는 21일 대낮 정오에서 55분쯤이 지나 난데없이 울려 퍼진 ‘대한사람 대한으'와 ‘로' 사이에 있었다. 애국가는 그 노래를 5월 내내 목놓아 부른 제 백성을 죽이는 신호탄이 되어 가장 모욕적으로 발사되었다. 진압군 한 지휘관이 실탄상자를 옮겨주면서 외쳤다. 이 새끼들아, 왜 조준사격 안 해. 총알 아깝게. 총알은 애국가를 찢으면서 날아왔다. 그 애국에는 양심, 인간애, 이성 따위는 없었다. 그날 초파일 행사에 바쁜 탓이었을까. 부처님은 미처 당도하지 않았고 조국의 탄환이 시민의 심장을 관통해 갔다. 이러한 것들이 5월의 수은주를 끌어올린 요소들이다. 그리하여 분명히 그해 5월은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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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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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5월은 덥다. 5월을 피로 물들였던 자들은 여전히도 노래를 틀어막는 일 따위로 5월을 처형하고 있다. 그 5월에 한 소녀가 일기를 썼다. 5월19일(월). 도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하루빨리 이 무서움이 없어져야겠다. 일기장 말미 메모난에는 이렇게 써두었다. 산수 복습. 오늘, 그 5월의 날씨와 기억을 복습한다. 한 치도 잊지 않기 위하여. 민주주의 후퇴는 독재와 학살의 시간을 잊어버린 자들에게 깃드는 망각의 복수다. 기억은 죽을 수 있지만 망각은 결코 죽지 않고 떠돌다 대낮을 범한다. 또 다른 애국의 이름으로. 그리하여 오늘도 필시 덥다.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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