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10 18:43
수정 : 2016.06.10 20:16
스타 인문학 강사인 최진기 선생이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조선 미술사’ 강의를 하던 중에 도판을 잘못 택한 일로 최근 비판을 받고 사과문까지 올렸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자료나 설명의 오류가 밝혀지면 언제든 사과하고 제대로 고치면 된다.
이번 일의 핵심은 자료 준비에서의 오류에서가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 자체가 가진 근원적 한계에서 찾아야만 한다. ‘인문학 스타 강사’로 알려진 최진기 선생은 그 전에 이미 유명한 ‘사회문화 과목 스타 학원강사’였다. 사탐 과목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경제 강사가 되었고, 이제 인문학으로 분야를 확장해 인기를 얻었다. 학원강사가 인문학 강사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인문학 강의가 학원 강의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데 있다. 학원 강의의 성패는 강의가 얼마나 이슈를 잘 요약하고, 핵심을 간파하고, 이를 알기 쉽게 정리해서, 궁극적으로 시험성적을 올리느냐 하는 데 있다. 요약·핵심·정리를 하면 모든 것이 명쾌해진다. 시험을 앞둔 수강생들에게 이런 명쾌함을 준다는 것은 학원강사의 실력이고 능력이다. 최진기 선생의 인문학 강의도 마찬가지의 명쾌함을 주었고, 이것이 그의 인기 비결일 것이다.
인문학이 학원 강의와 다른 점은 그것이 명쾌함과 단순함을 거부한다는 데 있다. 인문학이 명쾌하고 단순한 요약정리에 그친다면, 인문학 ‘부흥’은 최진기 선생 같은 스타 학원강사들을 발굴해서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일로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철학이든, 인문학 분야의 지식은 공부하면 할수록 명쾌해지는 게 아니라 더 모호해지고 더 복잡해지기만 한다. 인문학이 탐구하는 대상인 ‘인간’ 자체가 바로 그런 존재이고, 그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그런 공간이기 때문이다. 장승업과 신윤복의 화풍 특징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문학적인 사고는 장승업과 신윤복 화풍 내부에 있는 불일치와 균열, 그들의 작품이 발생한 시대의 상황, 나아가 장승업과 신윤복이라는 인물의 내면까지, 작품 안 대상으로까지 들어가려 한다. 그것은 명쾌하거나 단순하지 않으며, 삼성의 직무적성시험에 결코 나올 수 없는 문제다. 인문학이 ‘창조성’과 연결되는 지점은 바로 이 명쾌하지 않음, 이 모호함, 이 복잡함과 관련된다.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서 너는 네 안에 혼돈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시장에 간 차라투스트라는 줄타기 묘기를 부리는 광대를 본다. 대중은 즐거워하지만 그가 줄에서 떨어지자마자 흥미를 잃고 자리를 뜬다. 차라투스트라는 죽어가는 줄타기 광대를 껴안으며 초인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 철학은 줄타기에 모든 것을 거는 이 광대의 모습에서 ‘혼돈’을 발견한다. 니체에게 광대의 줄타기란 시장의 군중이 바라보듯 단순한 묘기,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를 초월하려는 의지의 현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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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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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줄타기는 명쾌해 보이지만 사실은 혼돈 그 자체이며, 이 혼돈을 사유하지 않고서는 그의 줄타기에서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다. 대중인문학은 이 혼돈을 제거한 채로 춤추는 별에만 집중하는 엔터테인먼트이다. 인문학은 혼돈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유 행위일 때만 의미가 있다. 바로 그럴 때만, 그것은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 인문학도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로 변했다. 엔터테인먼트가 된 인문학이 낳는 것은 명쾌하고 단순하다. 줄 타는 광대, 즐거운 대중, 증가하는 돈, 실패한 광대의 몰락, 그리고 새로운 광대의 등장.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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