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창훈의 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를 읽다가 법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이것은 남대서양에 격절되어 있는 영국령 트리스탄다쿠냐 섬의 주민들이 화산 분화 탓에 영국 본국으로 대피했다가 귀향하는 과정을 그린 연작소설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단 한줄의 법조문만 있는 나라’란 칼럼에서 이 섬에 대해 소개한 것에서 착상을 얻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섬의 법은 간명하다. “누구도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간주된다.” 나 역시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니, 1816년에 영국 해군인 윌리엄 글라스와 영국령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인 마리아 레인더르스의 입도 이래 1908년까지, 해상조난 등으로 섬에 온 15명의 각기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긴 시간 외부세계와 격절되어 살아온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인구는 약 200여명 정도로 영국 본국에서는 1년에 9번 화물선이 운항한다고 한다. 한창훈의 소설은 이 작은 섬에서 평화롭게 살아오던 사람들이 화산 분화로 인해 영국 본국으로 이송되어 왔다 겪게 되는 끔찍한 정신적 혼란과 귀향 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을 보면 일단 이들은 임금노동이라는 것 자체에 끔찍함을 느낀다. 시장에서 화폐를 지불하고 식량을 구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사회조직이 상하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도시인 모두가 고독·소외되어 있다는 사실 앞에서 문명과 번영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낀다. 이런 회의감과 충격 때문에 본국인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가축들과 함께 화산 분화로 황폐해진 자신들의 고향으로 단호히 돌아간다는 것이 이 소설의 골격이다. 이 섬사람들의 ‘평등’과 ‘우애’라는 법 관념에서 볼 때 영국은 결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법과 공동체의 문제와 관련하여 쓰인 한국 소설 가운데 가장 문제적인 작품을 쓴 작가는 조세희일 것이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나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에는 조세희가 꿈꾼 세계의 이념형이 미묘하게 드러난다. 일단 그 세계는 ‘사랑’이 사회 구성의 유일한 원리로 제시되고 있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이 사랑으로 조직된 공동체는 ‘릴리푸트읍’이라는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한 바 있는 축소된 세계의 형태로도 독자에게 제시되는데, 아마도 한창훈이 서사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트리스탄다쿠냐의 평등 원리도 이와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그곳에는 난장이의 생활을 위협하는 어떤 종류의 억압·불공정·공포·불공평·폭력도 없다. 권력을 추종자에게 조금씩 나누어주고 무서운 법을 만드는 사람도 없다.” 법은 무서운 것일까. 근대 국민국가의 헌법은 인민주권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회계약을 명분으로 사실상 주권을 국가에 양도해버렸다. 그렇다면 주권을 양도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되찾는 방법은 없을까. 오키나와의 시인인 가와미쓰 신이치는 창헌(創憲) 운동을 기치로 류큐공화사회 헌법C 사안을 <신오키나와문학>(1981)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시적 헌법에서는 국가도, 군대도, 소유도, 국적도 모두 부정된다. 사회 구성의 원리는 자치·자립·자결·자비에 기초한 코뮌주의다. 문학과 법 모두 좋은 사회에 대한 강인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창작은 창헌이다.
칼럼 |
[크리틱] 한창훈의 소설을 읽다가 / 이명원 |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창훈의 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를 읽다가 법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이것은 남대서양에 격절되어 있는 영국령 트리스탄다쿠냐 섬의 주민들이 화산 분화 탓에 영국 본국으로 대피했다가 귀향하는 과정을 그린 연작소설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단 한줄의 법조문만 있는 나라’란 칼럼에서 이 섬에 대해 소개한 것에서 착상을 얻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섬의 법은 간명하다. “누구도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간주된다.” 나 역시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니, 1816년에 영국 해군인 윌리엄 글라스와 영국령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인 마리아 레인더르스의 입도 이래 1908년까지, 해상조난 등으로 섬에 온 15명의 각기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긴 시간 외부세계와 격절되어 살아온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인구는 약 200여명 정도로 영국 본국에서는 1년에 9번 화물선이 운항한다고 한다. 한창훈의 소설은 이 작은 섬에서 평화롭게 살아오던 사람들이 화산 분화로 인해 영국 본국으로 이송되어 왔다 겪게 되는 끔찍한 정신적 혼란과 귀향 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을 보면 일단 이들은 임금노동이라는 것 자체에 끔찍함을 느낀다. 시장에서 화폐를 지불하고 식량을 구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사회조직이 상하관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도시인 모두가 고독·소외되어 있다는 사실 앞에서 문명과 번영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낀다. 이런 회의감과 충격 때문에 본국인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가축들과 함께 화산 분화로 황폐해진 자신들의 고향으로 단호히 돌아간다는 것이 이 소설의 골격이다. 이 섬사람들의 ‘평등’과 ‘우애’라는 법 관념에서 볼 때 영국은 결코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법과 공동체의 문제와 관련하여 쓰인 한국 소설 가운데 가장 문제적인 작품을 쓴 작가는 조세희일 것이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나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에는 조세희가 꿈꾼 세계의 이념형이 미묘하게 드러난다. 일단 그 세계는 ‘사랑’이 사회 구성의 유일한 원리로 제시되고 있다. “아버지가 꿈꾼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이 사랑으로 조직된 공동체는 ‘릴리푸트읍’이라는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한 바 있는 축소된 세계의 형태로도 독자에게 제시되는데, 아마도 한창훈이 서사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트리스탄다쿠냐의 평등 원리도 이와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그곳에는 난장이의 생활을 위협하는 어떤 종류의 억압·불공정·공포·불공평·폭력도 없다. 권력을 추종자에게 조금씩 나누어주고 무서운 법을 만드는 사람도 없다.” 법은 무서운 것일까. 근대 국민국가의 헌법은 인민주권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회계약을 명분으로 사실상 주권을 국가에 양도해버렸다. 그렇다면 주권을 양도하지 않고 국가로부터 되찾는 방법은 없을까. 오키나와의 시인인 가와미쓰 신이치는 창헌(創憲) 운동을 기치로 류큐공화사회 헌법C 사안을 <신오키나와문학>(1981)에 발표한 바 있다. 이 시적 헌법에서는 국가도, 군대도, 소유도, 국적도 모두 부정된다. 사회 구성의 원리는 자치·자립·자결·자비에 기초한 코뮌주의다. 문학과 법 모두 좋은 사회에 대한 강인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창작은 창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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