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최근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믹스라이스’의 조지은, 양철모 두 작가를 만났다. 나 자신이 문학평론가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미술평론가나 작가들과 공동작업을 한 경우가 더러 있어 첫 만남은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믹스라이스’가 기획한 아시아 미술 워크숍에서 타이완(대만) 작가 우줘류의 소설 <아시아의 고아>와 관련된 내 생각을 밝힐 기회가 있었다. 일제 말기 타이완인의 정체성 문제를 조명한 이 작품을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에서 방문한 미술인들과 토론하면서 타이완의 정체성과 식민주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참석한 작가들의 국적이나 시각이 상이했기 때문에 하나의 소설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여러 빛깔로 분광되어 해석되고 음미될 수 있었다. 미술은 시각예술로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구성하고 조직화하는 데 반해, 소설은 내러티브에 기반한 언어예술이기 때문에 이질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술 역시 다양한 화소와 고유한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분과예술 사이에 혹은 그 내부의 장르 간 혼합과 횡단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낯설게하기’란 개념은 일반적으로 시 창작의 주요한 기법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것은 예술작품의 존재방식과 수용자의 인식에 가하는 충격효과 모두를 의미하는 미학적 일반원리다. 그런데 각기 고유한 존재방식과 자율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는 예술 장르를 혼합하고 횡단시켜 새로운 미학적 소통양식을 만들 수 있다면, 규범화된 예술 개념이나 제도 자체를 낯설게하기를 통해 크게 구부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믹스라이스’가 수년 동안 고민하고 있는 작업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인도네시아에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되었던 조선인들 문제다. 전후 전범재판에 회부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던 이 모순적 인물들의 굴곡을, 그들이 오랫동안 작업해왔던 이주/이민/정체성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자 하는 셈이다. 본격적인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진행된 사전조사·인터뷰·연구작업 과정을 들으면서 나는 이주/이민/정체성의 문제를 같은 시기 오키나와에 강제연행된 조선인의 사례를 들어 비교·검토해 보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예술적 협업은 여러 차원에서 가능하다. 가령 지난 오키나와 방문에서 나는 한국계 오키나와 뮤지션인 ‘자메이 밴드’의 리드 보컬과 대화를 나누면서 큰 자극을 받았다. 자메이는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출신인 자신의 할머니 사례도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의 음악적 야심이 미야코지마의 민요와 한국 음악을 결합해 새로운 음악적 양식을 만들어내는 데 있는 것처럼 내게는 보였다. 이를 그는 영화 양식을 통해 표현하는 시도도 지속하고 있는데, 이렇게 장르의 경계를 횡단하거나 결합하는 일이 현대에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꼭 예술가나 비평가들 사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사실 예술적 작업의 과정에서 우리는 숱하게 많은 사람과 협력하고 협동하고 있다. 실로 예술적 작업의 기쁨은 개인의 자율성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받으면서도 동시에 예술가 동료들, 그리고 그의 작업에 재료와 영감을 부여하는 사람들과의 순조로운 협동작업에서 나온다. 오키나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협동작업을 한 바가 있다. 특히 예술가 사이의 협동작업은 더욱 촉진할 생각이다. 가령 나는 ‘믹스라이스’의 예술가들과 자메이 같은 뮤지션이 만난다면 이주/이민/정체성의 탐구와 미학적 양식화 역시 협동작업을 통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칼럼 |
[크리틱] 예술과 협동작업 / 이명원 |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최근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믹스라이스’의 조지은, 양철모 두 작가를 만났다. 나 자신이 문학평론가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미술평론가나 작가들과 공동작업을 한 경우가 더러 있어 첫 만남은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믹스라이스’가 기획한 아시아 미술 워크숍에서 타이완(대만) 작가 우줘류의 소설 <아시아의 고아>와 관련된 내 생각을 밝힐 기회가 있었다. 일제 말기 타이완인의 정체성 문제를 조명한 이 작품을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에서 방문한 미술인들과 토론하면서 타이완의 정체성과 식민주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참석한 작가들의 국적이나 시각이 상이했기 때문에 하나의 소설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여러 빛깔로 분광되어 해석되고 음미될 수 있었다. 미술은 시각예술로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구성하고 조직화하는 데 반해, 소설은 내러티브에 기반한 언어예술이기 때문에 이질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술 역시 다양한 화소와 고유한 내러티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분과예술 사이에 혹은 그 내부의 장르 간 혼합과 횡단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낯설게하기’란 개념은 일반적으로 시 창작의 주요한 기법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것은 예술작품의 존재방식과 수용자의 인식에 가하는 충격효과 모두를 의미하는 미학적 일반원리다. 그런데 각기 고유한 존재방식과 자율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는 예술 장르를 혼합하고 횡단시켜 새로운 미학적 소통양식을 만들 수 있다면, 규범화된 예술 개념이나 제도 자체를 낯설게하기를 통해 크게 구부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믹스라이스’가 수년 동안 고민하고 있는 작업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인도네시아에 포로감시원으로 동원되었던 조선인들 문제다. 전후 전범재판에 회부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던 이 모순적 인물들의 굴곡을, 그들이 오랫동안 작업해왔던 이주/이민/정체성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자 하는 셈이다. 본격적인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진행된 사전조사·인터뷰·연구작업 과정을 들으면서 나는 이주/이민/정체성의 문제를 같은 시기 오키나와에 강제연행된 조선인의 사례를 들어 비교·검토해 보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예술적 협업은 여러 차원에서 가능하다. 가령 지난 오키나와 방문에서 나는 한국계 오키나와 뮤지션인 ‘자메이 밴드’의 리드 보컬과 대화를 나누면서 큰 자극을 받았다. 자메이는 오키나와 미야코지마 출신인 자신의 할머니 사례도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의 음악적 야심이 미야코지마의 민요와 한국 음악을 결합해 새로운 음악적 양식을 만들어내는 데 있는 것처럼 내게는 보였다. 이를 그는 영화 양식을 통해 표현하는 시도도 지속하고 있는데, 이렇게 장르의 경계를 횡단하거나 결합하는 일이 현대에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꼭 예술가나 비평가들 사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사실 예술적 작업의 과정에서 우리는 숱하게 많은 사람과 협력하고 협동하고 있다. 실로 예술적 작업의 기쁨은 개인의 자율성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받으면서도 동시에 예술가 동료들, 그리고 그의 작업에 재료와 영감을 부여하는 사람들과의 순조로운 협동작업에서 나온다. 오키나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협동작업을 한 바가 있다. 특히 예술가 사이의 협동작업은 더욱 촉진할 생각이다. 가령 나는 ‘믹스라이스’의 예술가들과 자메이 같은 뮤지션이 만난다면 이주/이민/정체성의 탐구와 미학적 양식화 역시 협동작업을 통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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