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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15 17:10 수정 : 2017.12.15 19:20

서동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칼럼 ‘크리틱’ 원고의 마지막 차례에 이르렀다. 마침 한 해를 마감하는 즈음에 글을 마감하게 되어 기쁘다. 신문에 글을 쓰는 일은 제법 버거운 일이다. 신문이란 지면이 가진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독자들이 솔깃해하는 관심 탓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새로운 환경은 신문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끔 만들어버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가 앞장서서 뉴스를 만들면 신문은 그에 대한 소견을 덧붙이는 식이 되어버렸다 싶을 정도이다. 그만큼 오늘의 기분에 좌우되고 흥미를 장전하지 않은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이다. 시간이 지금의 순간으로 산산조각이 났을 때 말도 역시 그에 덩달아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칼럼을 쓰고자 마음을 먹으면서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이는 오늘의 화제, 아니 지금의 핫이슈, 현재 인기 검색어 순위 1위에 꼽히는 것 같은 것을 두고 절대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런 것에 끼어드는 글이 가치가 없다거나 경박하다는 것은 전연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널리 권장할 만한 일이다. 오히려 내게 걱정스러운 것은, 오늘 지금을 탐하려는 순간 그것이 오늘의 정조를 전한다는 의지로 인해 저지르기 쉬운 잘못, 그러니까 오늘의 말버릇, 유행어, 신조어에 정신이 팔릴 위험이었다. 어제 본 뉴스에서는 청년층의 실업과 빈곤을 나타내는 신조어를 설명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겪는 괴로운 삶은 고통이나 아픔 따위의 말로 간단히 처분되고 만다. 마치 그걸로 모든 것을 다 말했다는 듯이 말이다.

비트코인을 두고 새삼 야단법석이다. 세계화폐의 후보인 것처럼 보이는 이 가상화폐는 말과 많이 닮았다. 이따금 그깟 돈이 뭐냐며 탄식을 토할지라도, 화폐가 작은 금속 조각, 종이 나부랭이, 실체 없는 상징적인 부호에 불과할 뿐이라고 조롱해도, 화폐는 끄덕 않는다. 화폐는 무엇과도 교환될 수 있는 사회적인 힘을 누린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한 물건을 가지는 것보다 돈을 좇는다. 화폐의 가치에 견주어 모든 상품은 비교되고 그 상품을 만드는 데 투입된 노동도 비교된다. 이는 또한 자본주의가 움직이는 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위기에 이르도록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더 많은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찾아다니는 것이 장기인 독특한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는 비트코인이란 돈까지 만들어냈다.

2차 대전이 끝나며 세상을 전쟁의 파국으로 이끈 자본주의 위기를 진정시키고자 자본주의의 대표들이 브레턴우즈에 모였다. 금본위제가 붕괴된 뒤 모든 상품의 가치의 기준이 되어줄 화폐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들은 모였다. 아무리 상품을 생산해봤자 지폐나 숫자가 적힌 증서를 수중에 넣을 수 있을 뿐인 사람들에게 이 종이와 숫자의 가치를 보증해줄 수단이 필요했다.

영국 대표 케인스는 금본위제를 대신할 방코르라는 세계화폐를 제안했다. 그러나 결론은 알다시피 미국 대표가 제안한 달러-금본위제가 채택되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마침내 이마저 무너지고 우리는 변동환율제의 세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엔 방코르의 유령 같은 분신인 비트코인이 출현했다. 그러나 이는 안정된 교환의 질서를 마련하고 금융 투기를 조정할 미래의 돈은 아니다. 그것은 더 많은 돈을 약속하는 돈의 악마적인 약속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말이 처한 운명과 흡사하다. 오늘의 경매를 통해 가장 값비싼 값을 획득하는 것이 목표인 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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