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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12 18:12 수정 : 2018.01.12 18:49

허문영
영화평론가

해를 넘겼지만, 2017년의 잊지 못할 영화 한 편을 말하고 싶다. 그 영화는 지난해 10월27일에 개봉한 <내 친구 정일우>(감독 김동원)라는 다큐멘터리다. 독립 다큐멘터리로선 드물게 1만 넘는 관객이 보았고 마음을 적시는 평들도 여기저기에 올라 있지만, 이런 영화라면 뒤늦은 감상문 하나쯤 더 있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다.

1935년 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난 정일우(미국명 존 빈센트 데일리)는 1953년 예수회에 입회한 뒤 1960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했지만, 학교를 그만둔 뒤 한국의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살다가 1998년 귀화했고 2014년 6월2일 영면해 이 땅에 묻혔다.

이 영화의 많은 점을 좋아하는데 제목도 개중 하나다. 이 영화를 만든 김동원은 1955년생으로 1986년 철거문제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간 상계동에서 빈민들과 싸우던 그를 만났고, 이후 그와 3년간 같이 살았다. 자신보다 스무살 많은 벽안의 신부를 ‘내 친구’라고 부르는데 그 호칭이 이상하게 뭉클하다. 강산에가 부른 노래 ‘할아버지와 수박’에 나오는 ‘오 할아버지/ 나의 친구’라는 구절에서도 코가 찡해졌던 걸 떠올리면서, ‘내 친구’라는 평범한 호칭에 특별한 사적 정감의 마법이 담겨 있는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84분이라는 시간에 한 사람의 일생을 요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담는다 해도 그 열배의 시간조차 턱없이 짧으리라. 정일우의 성취가 간간이 언급되긴 하지만 우리 마음을 붙드는 건 그의 사적인 면모, 혹은 그의 실패라 부를 만한 순간들이다. 두 장면을 기억하고 싶다.

철거 이후 주민들이 살던 천막마저 탈취된 날, 정일우는 상계동 주민들에게 “가난해지면 질수록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거예요. 우리는 오늘 더 가난해졌으니까 잘된 거예요”라고 강론한다. 실제로 주민 공동체는 더 결속되었고,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상계동에 많은 지원이 답지했으며 그 지원을 바탕으로 주민들은 부천에 집단이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때부터 주민들은 사분오열되었고, 빈민공동체를 건설하려던 정일우의 꿈은 깨진다.

김동원은 독백한다. “(공동체의 실패에는) 지나친 지원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신부님과 제게도 책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부님의 명성과 제 카메라가 지원을 이끄는 데 한몫을 했으니까요.” 김동원이 정일우에 관한 기억을 듣기 위해 옛 상계동 주민에게 전화했을 때 그가 “그 시절은 기억나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싸늘하게 말하는 장면은 쓰라리다. 내레이션은 이렇게 이어진다. “신부님, 여전히 가난뱅이들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믿으시나요.”

정일우는 2004년 11월 단식기도 뒤 후유증으로 입원했고 10년을 앓다가 죽었다. 말년엔 치매환자 특유의 의심과 말 반복 증상을 어김없이 보였으며 종종 괴성을 질렀다. 빈민의 성자라 불리던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년이었지만 동료 성직자들은 “그 모습이 진짜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이 돼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다 드러낸다는 것이다”라며 그의 일그러진 모습을 바라보는 괴로움을 달랜다.

정일우는 후배에게 “사람은 누구나 깨진 꽃병이다. 이렇게 막고 저렇게 막고 해봤자 깨진 걸 숨길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내 친구 정일우>의 아름다움은 이 성자조차 깨진 꽃병임을 응시하는 정직한 시선, 깨진 상처를 어루만지는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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