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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3 19:12 수정 : 2018.04.13 19:23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최근 흥미로운 박사논문을 읽었다. 이종호의 <염상섭 문학의 대안근대성 연구>가 그것이다. ‘대안근대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짧은 지면에서 말할 수 없겠지만, 이 논문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은 독자들과 함께 음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사를 논의하는 가운데, 흔히 염상섭은 ‘중간파 작가’, ‘자연주의 문학’ 등으로 분류되곤 했다. 중간파 작가란 일제하 민족주의 문학도, 카프로 상징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도 아닌, 두 지배적 경향과 싸운 작가 혹은 그것을 절충한 작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간파=절충파라는 관점은 뭐랄까 염상섭 문학을 주류적 경향에서 벗어난 예외적인 작가로 ‘주변화’하는 효과를 초래한다.

염상섭의 문학을 ‘자연주의 문학’이라는 시각에서 논의하는 관성은 <암야>, <제야>,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의 초기 3부작을 근거로, 그가 작고한 1963년까지 40여년에 걸쳐 지속된 방대한 작품세계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는 논법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각이 중등교육을 포함한 한국의 문학교육에도 영향을 미쳐, 교보문고 앞에 배치된 염상섭 동상을 보고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등장하는 개구리 해부 장면이나 연상하는 현실을 낳게 했다.

이종호의 주장이 흥미로운 것은 염상섭 문학을 아나키즘이랄지 트로츠키류의 ‘영구혁명론’에 입각한 인류사적 예술의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해명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핵심은 1919년 3월19일 오사카 덴노지 공원에서 한국 노동자 대표로 발표한 독립선언서의 의미와 이 사건이 평생에 걸쳐 그의 문학에 끼친 영향에 대한 분석이었다.

이종호의 분석을 간략히 요약하면 도쿄에서의 2·8 독립선언, 조선에서의 3·1 독립선언과 민중들의 항쟁을 뒤늦게 알게 된 염상섭은 당시 3000여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거주했던 오사카에서의 ‘3·19 독립선언’을 통해 조선과 일본 모두에서 독립여론을 조직적으로 고양·증폭시키고자 노력했다. 거기에는 이른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운위되는 일본 내 민본주의, 대중운동의 고양이라는 정세를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염상섭의 ‘3·19 오사카 독립선언’은 한 개인의 돌출된 행동이 아니라, 오사카 지역의 조선 유학생과 노동자들의 조직화, 도쿄와 조선에서의 독립선언 이후의 정세 검토, <오사카 아사히신문> 등을 포함한 일본 내 미디어를 활용한 정보발신, 민본주의를 제창한 요시노 사쿠조나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 등과의 이후 접촉 등에서 볼 수 있듯,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사상적으로도 단호한 사고와 행동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염상섭은 3·1 운동에서 봉기 이상의 ‘혁명’의 의미를 발견했고, 그런 가운데 문자 그대로의 민주주의가 현실화되는 시간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3·19 오사카 독립선언의 체험은 이후 염상섭의 문학에서 관동대지진, 광주학생운동, 만주국의 붕괴, 조선의 해방공간, 4·19 혁명 등 역사적 격동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그것의 분석적 서사화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만세전> 이후 염상섭 소설만큼 일본인 표상을 직접적으로 등장시켜 식민지 체제의 폭력성과 제도화·심리화된 민족 간 갈등을 뚜렷하게 표현한 작가도 드문데, 아마도 이것은 리얼리스트였던 염상섭의 치밀함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사건의 의미를 사상으로 전환시키고, 이것을 다시 육화해 서사화하는 일.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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