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6월13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을 때, 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목소리가, 그의 노래가 떠올랐다. 부산·울산·경남에서 여권 후보의 당선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고질의 지역감정을 해체하고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를 맞았음을 보여준다. “대성산의 식물원에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심으신 나무를 돌아보고 왔다. 사진도 찍어 왔다. 2007년 10월2일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심으신 나무다. 얼마나 잘 자랐나. 기자 선생들 돌아가시면 노무현 대통령께서 심은 나무가 푸르싱싱함과 함께 10·4 정신이 살아 있고 6·15 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정신도 이어가겠다는 북녘 인민들 마음을 전달해주면 좋겠다.” 6월14일. 10년6개월 만에 열린 제8차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북쪽 수석대표 안익산 육군중장이 남쪽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의 손에는 ‘노무현 소나무’가 “푸르싱싱함”을 뿜어내고 있는 사진이 들려 있었다. 소나무는 그 속성을 인간화된 역사와 연결시키는 근원적 은유다. 소나무, 상록수, 교목(喬木) 등 부르는 말은 각각이지만, 그것은 대지와 창공을 마술적으로 결속시킨다. 지상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을 제 몸 안에서 육화시킨다. 이육사의 <교목>도 떠오른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고 외쳤던 강인한 역사에의 의지와 기개. 그것은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이기도 했겠지만, 서릿발 칼날 진 억압과 박해에 대한 견인주의적 비타협성을 잘 보여준다. 이육사는 식민지적 현실 속에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혹은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는 상황에 대한 가열한 극복 의지를 소나무, 상록수, 교목의 정념에 투사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1975년 김민기가 곡을 붙이고 양희은이 불렀지만, 금지곡이 되어 1988년에야 해금된 노래 <상록수>다. 이 노래를 우리는 역사적 국면에서 자주 불러왔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는 청유 속에는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쳤던 지난 역사의 질곡과 고통 속에서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를 미래에 대한 힘찬 의지가 담겨 있다. 소나무의 “푸르싱싱함”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온갖 자연적·인위적 제약을 뚫고 나온 푸르름이란 점에서, 교목의 나이테처럼 축적된 시간, 경험, 역사의 고투와 장엄한 아름다움을 환기시킨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제가 지역감정에 맞아 쓰러졌을 때 일으켜 세워 주신 분은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2002년 대선. 노무현 후보의 선거홍보 영상은 그가 기타를 연주하며 <상록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여러 번 “지역감정에 맞아 쓰러졌”다. 그런 그를 대선에서 국민이 “일으켜 세워” 주었지만, 다시 그는 쓰러졌다. 그러자 다시 국민이 그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2018년 오늘. 노무현이 뿌린 씨앗이 교목이 되어 기어이 푸르름을 뿜어내고 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10·4 선언은 “비바람 맞고 눈보라 치는” 극한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 공동성명을 통해 이제는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를 기세다.
칼럼 |
[크리틱] 소나무 생각 / 이명원 |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6월13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을 때, 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목소리가, 그의 노래가 떠올랐다. 부산·울산·경남에서 여권 후보의 당선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고질의 지역감정을 해체하고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를 맞았음을 보여준다. “대성산의 식물원에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심으신 나무를 돌아보고 왔다. 사진도 찍어 왔다. 2007년 10월2일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심으신 나무다. 얼마나 잘 자랐나. 기자 선생들 돌아가시면 노무현 대통령께서 심은 나무가 푸르싱싱함과 함께 10·4 정신이 살아 있고 6·15 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정신도 이어가겠다는 북녘 인민들 마음을 전달해주면 좋겠다.” 6월14일. 10년6개월 만에 열린 제8차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북쪽 수석대표 안익산 육군중장이 남쪽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의 손에는 ‘노무현 소나무’가 “푸르싱싱함”을 뿜어내고 있는 사진이 들려 있었다. 소나무는 그 속성을 인간화된 역사와 연결시키는 근원적 은유다. 소나무, 상록수, 교목(喬木) 등 부르는 말은 각각이지만, 그것은 대지와 창공을 마술적으로 결속시킨다. 지상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을 제 몸 안에서 육화시킨다. 이육사의 <교목>도 떠오른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고 외쳤던 강인한 역사에의 의지와 기개. 그것은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이기도 했겠지만, 서릿발 칼날 진 억압과 박해에 대한 견인주의적 비타협성을 잘 보여준다. 이육사는 식민지적 현실 속에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혹은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는 상황에 대한 가열한 극복 의지를 소나무, 상록수, 교목의 정념에 투사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1975년 김민기가 곡을 붙이고 양희은이 불렀지만, 금지곡이 되어 1988년에야 해금된 노래 <상록수>다. 이 노래를 우리는 역사적 국면에서 자주 불러왔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는 청유 속에는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쳤던 지난 역사의 질곡과 고통 속에서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를 미래에 대한 힘찬 의지가 담겨 있다. 소나무의 “푸르싱싱함”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온갖 자연적·인위적 제약을 뚫고 나온 푸르름이란 점에서, 교목의 나이테처럼 축적된 시간, 경험, 역사의 고투와 장엄한 아름다움을 환기시킨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제가 지역감정에 맞아 쓰러졌을 때 일으켜 세워 주신 분은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2002년 대선. 노무현 후보의 선거홍보 영상은 그가 기타를 연주하며 <상록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여러 번 “지역감정에 맞아 쓰러졌”다. 그런 그를 대선에서 국민이 “일으켜 세워” 주었지만, 다시 그는 쓰러졌다. 그러자 다시 국민이 그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2018년 오늘. 노무현이 뿌린 씨앗이 교목이 되어 기어이 푸르름을 뿜어내고 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10·4 선언은 “비바람 맞고 눈보라 치는” 극한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 북-미 정상회담과 북-미 공동성명을 통해 이제는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를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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