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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6 17:57 수정 : 2019.09.06 21:36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보이그룹 엑스원(X1)의 데뷔 앨범이 초동 판매량 50만장을 넘겼다. 초동은 책에 비유하면 ‘1쇄’와 같은 것으로, 음반이 출시되자마자 대대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는 의미다. 데뷔 음반이 초동 50만장을 넘긴 것은 국내 최초의 일이다. 그만큼 비상한 관심과 대대적인 인기가 쏠리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반면 이 그룹을 배출한 엠넷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엑스 101>은 시청자 투표 조작 논란에 휩싸여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그뿐 아니라 같은 방송사의 과거 다른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로 투표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2009년 <슈퍼스타 케이(K)>로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의 대유행을 이끌며 <프로듀스> 시리즈와 <쇼 미 더 머니> <고등래퍼> 등 히트 프로그램을 배출한 엠넷으로서는 커다란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가요계에서 조작 논란이란 숫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해마다 몇번씩 열리는 가요 시상식은 대체로 누리꾼 인기투표를 시행하고 매우 빈번하게 구설을 겪는다. 심지어 매주 방송되는 음악방송의 순위에도 논란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일어난다. 특정 집단에 의한 부정투표 의혹이냐, 주최 쪽에 의한 수치 조작 의혹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논란 하나하나를 모두 판단 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에 해당하는 공통점이라면 각 주최 쪽이 팬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팬 문화의 독특한 요소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성공을 직접 지원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연예인에게 순위를 매기는 과정에 동참하라고 하면 팬들은 움직이게 마련이다. 직접 투표를 하기도 하지만 가깝게는 지인에게, 멀게는 지하철 광고판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하는 일에 뛰어들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방송은 가만히 앉아서 홍보 효과를 누린다. 투표에 비용이 책정된 경우 그 수익도 무시할 수 없다.

팬들도 몰라서 동원되는 게 아니다. 어차피 편집과 방송 분량, 보너스 점수의 책정 등 방송이 출연자의 순위를 좌지우지할 방법은 많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다. 그럼에도 팬들은 좋아하는 인물이 경쟁에서 높은 순위를 얻는 데에 자신이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헌신을 선택한다. 그래서 이런 투표에는 일종의 거래가 성립한다. 정말 공정한 거래라고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은 남지만 말이다. 단, 이 거래의 이행 과정마저 부정행위가 있다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의 <프로듀스 엑스 101>이 그 경우다.

그래 봐야 연예인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 현상은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유사 연애감정이 팬심의 전부라는 것은 철 지난 오해일 수 있다. 특히 아이돌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팬들은 공정한 경쟁에도 큰 가치를 두게 되었다. 최소한, 불공정한 경쟁이 ‘내 가수’의 성공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팬들은 오디션이든 시상식이든 주간 음악방송이든 놓치지 않고 감시한다. 점점 계급화하는 사회에서 겪는 경쟁이 불공정하다고 느낄수록, 누군가는 공정한 환경에서 자신의 진가를 세상에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리만족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지난 10년간 지속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심정적 근간을 뒤흔든 일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이들은 참가자의 훌륭한 재능과 감동적인 이야기, 때론 혹독한 경쟁에 시달리는 고통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공정한 경쟁이란 환상조차 없다면 그 오디션에서 꿈을 느끼고 지켜볼 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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