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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8 18:16 수정 : 2019.11.09 13:49

미묘 ㅣ <아이돌로지> 편집장

최근 한 아이돌 팬덤에서는 기획사가 특정 멤버를 띄우느라 다른 멤버를 차별한다는 요지의 발언이 대량으로 등장했다.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 사건이 눈에 띈 이유는 따로 있다. 멤버에 대한 거친 비하 발언이 적지 않았는데, 그 어조에서 30~40대로 추정되는 요소가 많았다는 점이다. 성인 팬들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는 많다. 걸그룹 팬 사인회 현장에서 술을 마시는 남성 팬들도 있고, 고가의 카메라를 들고 덜 알려진 걸그룹만 따라다니며 부적절한 접근을 일삼는 이들도 종종 입길에 오른다. 오랜만에 컴백한 1세대 아이돌의 팬들이 다른 아이돌 팬들을 상대로 지나치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빈축을 사는 일도 있었다. 어떤 그룹은 성인 팬이 많다는 점이 곧 조롱의 이유가 되어 ‘멸칭’이 생겨나기도 한다. 아이돌 팬덤 내에서도 세대 갈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전체 사회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아저씨’에 대한 거부감과 비슷한 양상으로 표출되거나 기혼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케이팝 아이돌 세계에서 성인 팬의 존재는 이제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방탄소년단의 팬을 자처하여 곳곳에 불려 다니며 발언하는 40~50대 남성이 대거 등장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1990년대 아이돌 팬들이 성장해 여전히 아이돌 산업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팬이나 작가 등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2007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등장 이후로 성인 남성 팬의 존재는 업계의 기본 전제가 됐다. 아이돌에 관한 포털뉴스 댓글을 확인하면 30~40대가 7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실 국내에서 아이돌 팬이란, 제법 돈이 드는 취미이기도 하다. 공연 티켓은 물론이고 팬 이벤트 참석을 위해 수십만원을 쓰는 일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문화가 처음에는 십대 여성을 주된 타깃으로 삼았을지 모르나, 이제는 성인 팬이 없이는 좀처럼 돌아가기 힘든 곳이 됐다. ‘전 연령대의 문화’로 봐야 하는 이유다.

팬덤 내에서의 세대 갈등은 여전히 아이돌 문화를 십대의 전유물로 국한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벌어진다. 걸그룹을 향한 성인 남성의 부적절한 행동은 대체로 이런 사회적 인식의 빈틈을 악용하며, 연령적·젠더적 우위를 과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성인 팬들은 십대 같은 마음을 고스란히 내비치기도 한다. 물론 이는 좋은 의미도 될 수 있지만, 간혹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내려놓고 격정적인 몰입과 공격성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십대라고 전부 공격적인 것도 아닌데, ‘십대 문화니까’라는 사회적 인식을 핑계 삼으면서 말이다.

양쪽의 갈등이 있을 때, 한쪽의 일방적 양보가 늘 정답은 아니다. ‘나이 먹고 아이돌이나 좋아한다’며 성인 팬을 배척하는 것도 바람직한 팬덤 문화는 아니다. 다만 성인 팬들이 눈살 찌푸릴 행동을 할 때는 팬덤 문화를 떠나 사회인으로도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 사이버불링이나 사생활 침해, 아이돌을 향한 부적절한 언동 등은 익히 알려진 팬덤 문화의 어두운 이면이다. 또 자신들을 비하하는 외부의 시선에 맞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 갖은 노력을 경주해온 것도 팬덤의 문화다. 그런데 성인 팬들이 이를 더 나은 것으로 바꿔 나가려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저연령 팬들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이제는 성인 팬의 도리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십대 팬들에게 욕먹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성인의 책임감으로서 말이다. 연하의 아이돌과 십대 팬들을 상대로 어떤 선을 지키고 어떤 모습을 보이며 함께 공동체를 이뤄갈지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아갔으면 한다. 아이돌 문화와 함께 20년을 살아왔다면 그 정도는 해야 어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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