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0.18 21:20 수정 : 2006.10.19 10:16

사진 허광

[김중혁의 ‘달콤한 끼니’] 부침개 비법

단군 이래 최대 연휴라는 지난 추석 때 나는 고향에 내려가질 못했다. 일 때문이었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고향에도 내려오지 않느냐는 퉁바리맞을 각오를 했건만 부모님은 별 말씀 없으셨다. 그냥 조금 섭섭하다고만 하셨다. 섭섭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따뜻한 손을 맞잡지 못해서,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조카들의 에너지를 느끼지 못해서, 해마다 벌어지는 고향 친구들과의 명절 야구 시합에 참여하지 못해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동그랑땡’과 배추전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치 - 라는 게 있다면 말이지만 - 보다는 명절 때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결혼하기 전에도 그랬고, 결혼 후에도 그렇다. 부침개 부치는 일을 많이 하는데, 이게 하다 보면 의외로 재미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그동안 묵혀뒀던 얘기를 하는 재미도 있고, 실패작 부침개들을 은근슬쩍 집어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허, 이거는 모양이 안 예쁘고”, 먹고, “이를 어쩌나, 이거는 끄트머리가 살짝 탔고”, 먹고, “에구머니, 두 동강 나버렸네, 어쩔 수 없고”, 먹고, 먹다 보면 배가 불러서 명절 전날에 이미 보름달을 삼킨 것처럼 배가 불룩해지고 만다.

내 주특기는 동그랑땡이다. 숟가락 두 개를 이용한 동그랑땡 뒤집기 실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머니의 찬사를 받아왔고, 최근에는 동그랑땡 계란옷 입혀 프라이팬에 얹기에도 도전하고 있는데, 조금만 더 연마하면 내후년 설쯤에는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동그랑땡 뒤집기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우선 프라이팬에 얹은 시점을 기준으로 동그랑땡을 분류한 다음 - 보름달만큼이나 큰 프라이팬을 이용하기 때문에 네 그룹 정도로 나눌 수 있다 - 계란이 적당하게 익었을 때 빠른 속도로 그룹 전체를 뒤집어 주어야 한다. “큰아버지가 이번에 녹두 농사를 지었는데 맛이 아주 좋더라” “녹두부침개 해 먹으면 맛있겠네요”라는 대화를 하면서도 내 눈은 수많은 동그랑땡의 상태를 관찰하고 있다. 집중이 관건인 것이다.

오랜 시간 부침계(契)에 몸담은 나로서도 절대 할 수 없는 부침개가 있으니, 바로 배추전이다. 어머니가 배추전을 부치는 모습은 경이 그 자체다. 우선 동그랗게 말린 배추 몇 조각을 프라이팬에 얹는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배추 조각들을 편다. 아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배추가 펴지면 그 위에다 반죽을 얹는다. 반죽을 얹을 때도 역시 손으로 한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야 반죽이 골고루 퍼지고, 펴진다. 흩어진 배추 조각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도 반죽의 역할이다. 나도 한번 해본 적이 있는데, 너무 뜨거워서 손을 대기가 힘들었다. “뜨겁지 않아요” 어머니는 뜨겁지 않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손은, 뭐랄까, 너무나 두껍고, 거칠고, 딱딱해 보였다. 배추전은 인생의 연륜으로 만드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배추전과 동그랑땡을 가장 좋아하지만, 우스운 사실은 두 음식 모두 차롓상에는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그냥 명절 때 만들어 함께 먹는 음식인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 두 음식을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에는 꼭 고향에 내려가야겠다. 사진 속의 부침개는 피맛골의 열차집 것인데, 맛있긴 하지만 내가 부친 것만 못하다.

김중혁/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중혁의 달콤한 끼니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