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3 21:37
수정 : 2006.12.1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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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비스트로 스타일을 지향하는 ‘비스트로디’의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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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달콤한 끼니
도산공원 앞 ‘비스트로디’
한때 에니어그램(Enneagram)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에니어그램이란 아홉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엔네아’(Ennea)와 그림이라는 뜻의 ‘그람모스’(Grammos)를 합친 말인데, 말 그대로 인간을 아홉 가지 유형으로 나눈 그림을 말한다. 에니어그램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간을 분류하고 있는지는 그만두고, 나는 ‘인간을 분류한다’는 그 섣부른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 열 길 물속을 알 정도면 한 길 사람 속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그 패기가 신선했다. 에니어그램 관련 책을 열심히 읽다 보니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상대방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추측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위험한 취미였지만,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아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상대방의 유형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함께 식사를 해보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식당을 고르고 밥을 먹는 시간은 그 어떤 순간보다 압축적이다.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을 것인지 골라야 하고, 식당에 들어가서는 메뉴를 선택해야 하고,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고, 먹고 나서는 음식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난 아무거나 먹어도 돼요”라고 얘기하고는 음식에 유난히 까다로운 사람-내가 그렇다-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일행을 자신의 단골집으로 이끄는 사람-독불장군 스타일-도 있으며, 늘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사람-민주적이랄까-도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해 식당을 추천받는 사람-인맥이 넓은가-이나 상대방의 취향을 정확히 기억하고는 거기에 알맞은 식당을 추천하는 사람-꼭 만나고 싶은-도 있다. 하지만 에니어그램에서도 밝히고 있듯 모든 유형의 사람은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면 독불장군 스타일을 편안해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어요”라고 말을 하면서 음식에는 까다로운 유별난 내 성격을 눈치챈 건지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퍽 난감하다. 그 어떤 순간보다 압축적인 시간을 보낼 장소를 추천해 달라는데 난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추천해줄 만하지 않나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도산공원 건너편의 레스토랑 ‘비스트로디’(02-3443-1009) 역시 그런 곳 중 하나다.
비스트로디는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뉴욕의 비스트로 스타일을 지향하는 곳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요리법을 넘나들고, 메뉴는 다양하며, 좌석은 널찍하게 편안하고, 분위기는 자유롭다. 어느 유형의 사람에게 추천하더라도 흠 잡히지 않을 곳이다. 비스트로디에서 가장 자주 먹게 되는 메뉴는 ‘타파스’다. 타파스를 듣자마자 스페인식 간식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곳의 타파스는 적은 양의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 메뉴’에 가깝다. 위가 크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다양한 요리를 먹고 싶은 사람이라면 비스트로디의 타파스를 추천한다. 5만원 정도면 여러 가지 전채와 고기 요리와 디저트까지 나오니 두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파스타나 리조토의 맛도 정확하게 낼 줄 알며, 커피도 괜찮은 편이지만 디저트는 조금 아쉽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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