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알아야 할 디지털
학교 현장에서 디지털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스마트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시범사업이 실시되었고, 성공적 사례들로 방송된 바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교실에서의 눈에 띄는 진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 더 이상 탄력을 받지 못했을까? 학교 교실을 디지털화하겠다던 정부에서 언젠가부터 꾸준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도 이유일 테고, 교육용으로 적합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태블릿피시 시장이 커지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후원이 점차 줄어든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이다. 문제의 본질에 닿기 위해서는 과연 디지털 교육의 순서가 제대로 된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다. 우리는 기존 교과목을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를 통해 전달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당시로서는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먼저 가르쳐야 하는 내용은 따로 있었다. 이시도 나나코가 지은 <미래교실>에는 일본 한 초등학교 디지털 수업의 바람직한 예가 나온다. 이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1명당 1대의 컴퓨터가 주어진다. 정사각형 블록 6개를 조합해 정육면체의 전개도를 만드는 수업을 컴퓨터로 진행한다. 얼핏 보면 수학 수업 같다. 이 수업의 핵심은 디지털 세상의 원리와 생존법을 가르쳐주는 데 있다. 자신의 파트너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은 하면 안 되고 댓글만 달 수 있다. 이때 교실 아이들끼리 블록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결국 험한 댓글이 올라오고 상처를 받고 우는 아이들도 생겨난다. 이 과정은 수학 수업을 가장한 정보 리터러시-정보를 수집, 분류, 분석, 종합하는 능력- 수업이다. 대면 접촉을 할 수 없고 댓글로만 교류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어떻게 해서 다툼이 생기는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이런 수업은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꼭 필요한 내용이다. 디지털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통해 디지털 세상의 작동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업이 더욱 발전하고 수행 이력이 잘 관리되면, 그 학생의 현재와 미래의 디지털 세상에서의 성향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페드로 도밍고스의 <마스터 알고리즘>에 따르면, 학생 한 명씩 스스로에게 대화를 걸 수 있는 디지털 거울의 역할까지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고평석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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