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 : 이승준의 ‘핑퐁’
슈틸리케호는 변했는데 새정치연합은…
“정치와 스포츠는 유사한 속성이 많다.” 정치부를 오래 출입한 선배 기자들이 종종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스포츠부에서도 일해보고, 현재 야당을 출입중인 저는 긴가민가합니다. 야당팀 막내로 보낸 2년, 팍팍한 여의도 생활에 그나마 야구나 농구 등 스포츠 경기가 기쁨을 주긴 했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시도해봅니다. 스포츠와 정치 유사성 찾기 프로젝트!! 연재물 문패 이름도 정했습니다. “핑퐁”. 매일 공방을 벌이는 여야의 모습을 볼 때면 탁구공을 쉴새없이 주고받는 녹색 테이블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을 정리하면서, 스포츠 이야기든, 정치 이야기든 여러분과 수다를 떨고 싶습니다. 소재가 언제 고갈될지 모르지만…. 정주행 고고!
한달 전,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이 오찬간담회를 했습니다. 대뜸 유럽 축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인 첼시가 올해부터 경비원, 볼보이 등의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주기 시작했다.”, “축구광인 메르켈은 축구를 보면서 정치의 영감을 얻는 것 같다.” 이후 다시 본래 간담회가 진행됐지만, 저는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관심을 놓고 ‘축구와 정치’라는 딴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치인들은 축구광이 많습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중국의 시진핑 주석 모두 유명한 축구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타 공인 19대 국회에서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린다”고 스스로 내세우는 최재성 새정치연합 의원처럼 ‘플레이’를 즐기는 국회의원도 많습니다. 간혹 지역구민과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며 목발을 짚고 국회를 오가는 의원을 볼 때도 있습니다. 정치인이 축구에 비유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때도 있습니다. 최근 문재인 새정치연합 당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는 안철수 새정치연합 전 공동대표가 몇 달 전 “축구 졌다고 슈틸리케가 아닌 홍명보한테 책임을 묻느냐”며 전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온당치 않다는 이야기를 축구에 빗댄 것도 기억이 나네요.
한·일 의원들 친선축구 지난 6월1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8회 한·일 국회의원 축구대회에서 양국 의원들이 경기 시작에 앞서 기념품을 교환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회의원 축구연맹 회장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왼쪽 둘째)과 부회장인 최재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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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에 가까운 축구팬들이 많아 ‘번데기 앞에 주름잡기’지만 제가 보는 축구의 기본 원리는 “중원을 장악하고 점유율을 높여 골을 넣는다”입니다. 우리 진영을 굳건히 해 상대 진영의 공격을 차단하고 최대한 상대편을 거세게 몰아치는 것도 축구의 중요한 원리죠. 평소에 자신의 핵심 지지층을 굳건히 하고 중도층을 끌어와 선거에서 승리를 꾀하는 정당 정치의 모습과 겹쳐볼 수 있지 않을까요? 또 센터 라인에서 미드필더가 공을 두고 다툼을 벌이듯 정치는 여당과 야당이 국회에서 일상적으로 현안을 두고 격돌합니다. 4년마다 열리는 국가대항전인 월드컵이 축구의 중요한 이벤트이듯, 정당도 4년마다 열리는 국회의원 선거와 5년마다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 총력을 다합니다. 이런 생각을 동료들과 나누다 보니 “야당인 새정치연합과 한국축구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국민들에게 야당과 축구는 좋은 ‘안줏감’ 입니다. 수시로 애정(?)어린 비판과 욕(?)을 합니다. 하지만 축구를 오랜 기간 담당해온 타사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한국축구는 변하고 있고 희망도 있는데 야당은 희망이 있느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치부 기자로서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야당과 한국 축구를 비교해봅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답변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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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시로 리더를 교체한다
과거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자리는 ‘파리목숨’이었습니다. 성적부진을 이유로 수시로 교체가 됐죠. 열린우리당이 2004년 1월 첫 당의장을 선출한 뒤 지금의 새정치연합에 이르기까지 11년8개월 동안 지도부는 무려 27번 교체됐다고 합니다. 평균 수명은 5개월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당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성적이 부진하거나 당이 선거에서 패할 경우 감독이나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잦은 리더십 교체는 ‘강팀’의 조건은 아닙니다. 흔들리는 야당과 달리 한국 축구대표팀은 슈틸리케 사령탑을 중심으로 내년부터 시작하는 2018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2. 저변(기초)이 약하다.
흔히 한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로 ‘저변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얼마 전 칠레 U-17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17살 이하 남자 축구 대표팀처럼 유소년 축구부터 강해지고 있습니다. K리그에 대한 팬층도 두터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은?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이나 진보정당인 정의당 등의 지지층은 여전히 취약합니다. 당원 기반도 좀처럼 확대되지 못하고, 새로운 인재의 충원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야당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3. ‘뻥축구’에 의존한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뻥축구’였습니다. 미드필더에서 세밀한 플레이로 패스를 연결해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롱패스로 공을 문전으로 띄워 우리 공격수 발이나 머리에 걸리는 요행(?)을 기대하는 축구는 승리를 가져올 수 없죠. 물론 한국 축구는 기성용, 이청용 선수 등의 등장 이후 세밀한 축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은 평소 전략 부재로 취약함을 노출하다가 선거 때가 되면 ‘심판론’이라는 ‘뻥축구’에 기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지난해 6·4지방선거, 7·30 재보궐 선거, 올해 4·29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은 애초 ‘민생이슈’에 무게를 두고 선거에 임했지만, 결국 막바지 심판론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노출했습니다. 정권 중반 치러지는 선거에서 정권의 무능함을 부각하는 심판론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근 야당의 심판론은 2% 부족하다는 성찰이 나오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골망을 흔들기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플레이가 필요하듯 선거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려면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반성이 야당안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4. 골 결정력이 약하다
‘뻥축구’에 의존하는데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마저 약하면 이기는 경기를 만들기 쉽지 않죠. 한국축구는 스트라이커 부재라는 고질적 약점에 시달렸지만, 최근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선거라는 ‘문전’에서 헛발질을 하면 관중들의 마음이 떠나가는 건 축구나 정치나 마찬가지입니다. 야당이 선거를 앞두고 불필요한 막말 등 예기치 않은 헛발질에 곤욕을 치른 사례는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앞줄 맨왼쪽)가 13일 오전 ‘김상곤 혁신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당무위원회 시작에 앞서 조국 혁신위원 등과 악수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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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외부에서 ‘수혈’ 해서 생존한다.
히딩크, 아드보카트, 슈틸리케…외부에서 수혈한 인사들이 감독을 맡았을 때 한국 축구가 빛날 때가 많았습니다. 야당도 최근 몇년을 보면 외부 수혈로 꾸준히 생존해왔습니다. 2014년 3월 안철수 세력과의 통합으로 탄생한 새정치연합이 좋은 예입니다. 당 내부에선 독자적 생존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대선 후보도 발굴하지 못하는 등 외부 수혈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최근에만 해도 새정치연합은 ‘김상곤 혁신위원회’, 공직자선출직평가위원회, 윤리심판원 등을 모두 ‘외인구단’ 위주로 짰습니다. 물론, 외부인사 수혈은 외부인재 영입이란 측면에서 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기풍을 심을 수 있습니다. 장점도 많다는 얘기죠. 하지만, 갈등의 조율, 이견의 절충을 생명으로 하는 정당이 내부 균열을 해소하지 못한 채 해법을 외부의 손길에 자꾸 기대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정당의 자생력을 갉아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6. ‘의리’, ‘연고’, ‘파벌’, ‘온정주의’가 논란이 된다.
지난해 홍명보 감독이 이끈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이 ‘의리 축구’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의리, 연고, 파벌, 온정주의는 한국축구를 따라다니는 ‘꼬리표’입니다. 그래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야당 역시 계파 갈등과 온정주의 등으로 비판받습니다. 새정치연합은 현재도 당내 주류-비주류간 힘겨루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의리와 파벌에 좌우되는 팀이 강팀이 되기는 힘듭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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