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더불어민주당 탄생기
손혜원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이 지난 28일 오전 국회에서 당명공모를 통해 새 당명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선정됐음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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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곧 나에게로 와서 내가 부른 이름대로 모습을 바꾸었다.” 오규원 시인의 시 <꽃의 패러디>의 한 구절입니다. 12월28일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당내 여론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반응을 보면서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각각 야당에 대한 아쉬움과 바라는 것을 당명에 투영하고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려진 대로 마지막까지 새정치연합의 당명은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해 민주소나무당·희망민주당·새정치민주당·함께민주당 등 5개 후보작이 경합을 벌였습니다. 시민들이 공모한 3200개의 당명을 두세 차례 추린 결과입니다. ‘민주’라는 단어가 3200개중 60% 이상을 차지한 것에서 ‘민주당’이라는 전통적인 이름에 대한 야당 지지자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민주소나무당’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당명 변경 작업을 총괄한 손혜원 새정치연합 홍보위원장(브랜드 전문가로 유명하죠)이 “전율을 느낀 당명”이라고 민주소나무당을 꼽기도 했습니다. 당직자들이나 기자들은 민주소나무당이란 이름에 싸늘했습니다. 하지만 여의도 밖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정당 이름치곤 신선한데다, 수시로 흔들리고 분열하는 야당에,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특성을 투영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이탈리아의 중도좌파연합 ‘올리브나무 동맹’이 연상된다고 올리자 댓글에서 ‘그러고 보니 신선하다’는 반응이 달렸습니다. 물론‘대나무당’이나 ‘인동초당’이 더 낫지 않느냐는 반박(?)도 나왔습니다. 또 “언제적 감각이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진지한 궁서체’로 반응하셨습니다^^) 하지만, 소나무가 ‘식물’이기 때문에 당명으로 절대 안된다는 예상 밖의 의견도 나왔습니다. 당명이 발표된 뒤 한 당직자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민주소나무당으로 될까 봐 내심 걱정했다. 앞으로 야당이 못할 때마다 식물정당이란 소리 듣는 거 아니냐.” 가뜩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압박하며 무조건‘기승전야당’ 탓하고 있고, 당내 분열로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하고 있는 가운데 당직자 입장에서는‘식물정당’이란 꼬리표까지 얻는 게 아찔하겠죠. ‘새정치’라는 이름이 사라진 것이 탈당한 안 의원의 흔적을 지운 것이라는 시각도 (당연히) 나왔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4년 3월 독자창당을 추진하던 안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김한길 당시 대표의 민주당이 합당해 탄생한 이름입니다.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이번에 ‘새정치’라는 이름이 안 의원의 탈당과 함께 사라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당내에서는 ‘새정치’라는 이름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합니다. 출입 기자들도 ‘새정치민주당’을 유력한 후보로 꼽기도 했습니다. 손 위원장은“새정치를 버리는데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새정치는 쉽게 그 이름에서 떠오르는 게 없고 피상적이다”고 탈락 이유를 밝혔습니다. 결국, 당지도부인 최고위원회의 최종 심사에서 ‘더불어’가 선택됐습니다. ‘국민과 더불어, 참신한 정치인과 더불어, 혁신과 더불어, 이 사회의 약자와 더불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탈당·분당론으로 분열되고 흔들리는 제1야당의 초라한 자화상이 엿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날 최재천·권은희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손 위원장은 “앞으로 국민과 더불어 민주당, 노동자와 더불어 민주당, 고3 엄마와 장애인과 더불어 민주당 등으로 사용될 것이다”고 당명의 확장성을 강조했습니다. ‘더불어’가 내년 총선 등 선거에서 구호로 외치기에는 좋다는 고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더민주당’이 약칭으로 유력하게 검토되는 가운데, 당장 원외 민주당은 보도자료를 내어 “약칭을 ‘더민주당’으로 한 것은 정당법 위반이다. 중앙선관위에 제재를 신청하고 법원에 당명사용금지 가처분도 신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약칭이 무엇으로 선택될지도 관심을 모읍니다. ‘더민당’인지, ‘더불어당’인지, 기자들도 당장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더불어’는 동사 ‘더불다’의 활용형인데 국어 문법상 명사를 꾸며주기보다는 다른 동사를 꾸미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의견도 들립니다. 참고로 선정 과정에서 1·2차 후보작으로 추려진 당명 가운데 눈에 띄는 당명을 소개합니다. 당명 공모에 참여한 이들의 바람이 가감 없이 담겨 있습니다. 낮은오름당(오름: 산을 뜻하는 제주방언), 민들레당, 온새미로당(온새로미는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 아래아민주당(태초에 하늘(아래아)가 있고 진리와 정의가 가득한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 민주당이 있었다), 다산당, 경제제민당, 경민당, 민생당, 너·나·우리당, 바른당, 우리당, 서민민주당…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이란 당명의 수명은 1년9개월이었습니다. 잦은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며 수차례 이름이 바뀐 까닭에 과거 제1야당의 이름들도 명멸을 거듭했습니다. 1987년 평화민주당, 1991년 민주당,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2000년 새천년민주당, 2002년 민주당, 2003년 열린우리당,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2008년 통합민주당, 2011년 민주통합당, 2013년 민주당,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새누리당은 야당보다 당명의 수명이 길었지만 역시 여러 이름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2012년 현재의 당명으로 바꾼 새누리당은, 민주정의당(1981년)-민주자유당(1990년)-신한국당(1995년)-한나라당(1997년)의 이름을 거쳤습니다. 정의당은 내년 총선 뒤 당명 변경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반성으로, 사회민주당 등이 대안으로 오르내리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녹색당이 창당 3년 만에 가장 오래된 정당이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변경에 대해 “포장지만 바꾼다고 해서 사람들이 내용물이 바뀌었다고 믿겠느냐”고 꼬집었습니다. 물론 이 발언은 ‘부메랑’으로 안 의원에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안 의원을 포함해 몇몇 의원들의 탈당으로 내용물이 바뀌었다는 감정 섞인 반론도 있습니다. 안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은 1월 초에 당명을 공모한다고 합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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