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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31 14:13 수정 : 2015.12.31 15:59

정치BAR_이승준의 핑퐁
보는 사람마저 불편했던 17일만의 조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지난 30일 오전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의장 4주기 추도미사에서 대화를 나눈 뒤 뒤돌아 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금은 탁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인 1990년대 유남규· 김택수·현정화 선수 등 탁구선수들의 인기는 높았습니다. 이들이 중국 선수들과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쉴새없이 하얀색 또는 오렌지색 공을 주고받는 모습은 숨이 막혔습니다. “아자!”출발을 알리는 기합이 터져나오면 이들은 이 세상에 오직 탁구대와 자신들밖에 없다는 표정으로 쉴새없이 팔을 휘두릅니다.

갑자기 웬 탁구 이야기냐고요? 국회에서 세번째 겨울을 보내니 2013년 9월 초, 국회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가 떠올라서입니다. 저 같은 말진기자(팀의 막내를 뜻하는 기자들의 은어)는 일단 정치인의 ‘입’을 쫓아다닙니다. 여당 대표나 대변인이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면, 선배기자들은 제게 묻습니다. “야당은 뭐래?” 저는 대변인에게 전화해 묻습니다 “여당이 이랬는데 어떻게 보냐, 브리핑을 할 거냐?” 야당 정치인이 한마디 합니다. 그럼 또 여당의 분위기를 묻습니다. 여.야.여.야.여.야.…………똑.딱.똑.딱.… 핑.퐁.핑.퐁. 끊임없이 공은 오갑니다. 국회에서 하루를 보내면 거대한 탁구대에서 왔다 갔다 한 기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말진 기자는 탁구 경기가 여야 사이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친박-비박, 주류-비주류… 등 같은 당에서도 드라이브를 넘기고, 스매싱을 하며 공을 주고받습니다.

탁구 이야기를 꺼낸 또 다른 이유는 17일 만에 만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빚어낸 어색한 풍경 때문입니다. 12월30일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4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함과 긴장감이 가득했습니다. 지난 13일 안 의원이 탈당하기까지 공방을 벌여온 이들의 핑퐁게임은 이 자리에서도 계속 됐습니다. 단, 두 사람의 핑퐁게임은 한국-중국 선수들같이 고수들이 주고받는 환상의 랠리가 아닙니다. 서로 공수를 주고받지만 공은 제 갈 길을 잃고 이리 튀고 저리 튑니다. 경기는 툭툭 끊어집니다.

(안 의원이 탈당 선언한 12월 13일 밤 1시께 노원구 상계동 안 의원 자택 앞)

문재인 대표: 만나서 대화로 풀자
안철수 의원: 아침에 맑은 정신에 만나자

(30일 오전 10시20분 창동성당 1층,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지만 몇 분간 문 대표는 오른쪽 문희상 더민주 의원을, 안 의원은 왼쪽 취재진을 바라봄)

문 대표: 뭐 신당 작업은 잘 돼갑니까?
안 의원: 지금 시간은 촉박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빠서) 연말연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문 대표: 총선 시기에 맞추려면 시간이 별로 없죠?
안 의원: 네네. 다들 마찬가지죠…. 선거구제 획정도 끝나지 않았는데 지금 어떻게 진행 돼가고 있습니까?
문 대표: 내일 정도 본회의 열어서 뭐 처리하려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 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긴 했지만 긴장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2012년 대선 후보 단일화 국면, 2015년 문 대표의 인재영입위원장 제의-안 의원 고사, 문 대표의 혁신위원장 제의-안 의원 고사,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제안 공방, 탈당 등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가 이 대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11살이 많은 문 대표가 말을 먼저 건네면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인 안 의원이 응수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합’이 잘 맞지 않습니다.

“총선 시기에 맞추려면 (창당준비에) 시간이 별로 없지 않으냐”는 문 대표의 ‘뼈있는 질문’에 안 의원은 “선거구제 획정도 끝나지 않았는데, 지금 어떻게 진행 돼가고 있나”며 화제를 돌려 선거구제 획정을 풀지 못하고 있는 문 대표를 겨냥합니다.

이 대화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과거 수차례의 만남을 거치고 난 뒤 양쪽 관계자들의 반응은 항상 비슷했습니다. 안 의원 쪽 관계자들은 “문 대표가 무례하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문 대표 쪽 관계자들은 “안 의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당내 인사들은 두 사람을 ‘개와 고양이’에 비유하거나, 화성에서 온 남자-금성에서 온 여자로 빗대기도 합니다. 민주화 운동 세대로 변호사 출신인 문 대표와 의사-CEO 출신의 안 의원의 성향 차이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성당 안에 들어가서도 중앙통로를 사이에 두고 문 대표는 오른편 앞줄에 당 지도부와 앉았고, 안 의원은 왼쪽 넷째 줄에 앉아 거리를 뒀습니다. 이인영 더민주 의원이 안 의원에게 “앞줄로 오시라”고 권했지만 그는 “제가 앞에 나설 자리가 아니다. 아무래도 같이 (사진) 찍히는 게 좀.”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 의원은 탈당 전후로 ‘낡은 진보를 청산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여기서 낡은 진보는 더민주 내 86그룹과 친노(친노무현계) 그룹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낡은 진보 청산’에 당내 86그룹은 불쾌감을 비치기도 했습니다. 이인영 의원은 민주화운동의 대부인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정치적 적자로서 86그룹의 대표 주자입니다. 이들을 비판하며 탈당한 안 의원에게 추모 행사가 편한 자리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신부님의 강연에서 야권 분열에 대한 우려가 나왔고, 문 대표도 추도사에서 “(야권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김근태) 선배님이 우리에게 남긴 말씀”이라고 통합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도 둘의 핑퐁게임은 계속 됐습니다. 추모미사 뒤 문 대표는 “(안 의원과)어색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색할 수도 있지만 어떡하나. 앞으로 좋은 경쟁을 해나가야 하고, 언젠가 또 합치기도 해야 하고, 길게 보면 같이 가야 할 사이”라고 답했습니다. 안 의원은 기자들에게 “제 원칙(연대·통합은 없다)은 벌써 세 번에 걸쳐 말씀드렸다”고 잘라 말하고, “여야가 밤을 새워서라도 협의해 소선거구제를 조금이라도 바꿔달라”고 문 대표를 압박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며 최근 한 달 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야당 내분을 이종격투기 중계방송처럼 다룬다”([강준만 칼럼] 야당 내분이 이종격투기인가? http://goo.gl/AXV67c), “양비론이 지나치다.”, “한쪽에만 편향됐다”는 전문가들과 독자들의 싸늘한 평가에 충분히 동의하고 반성도 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삐걱대는 탁구 경기는 내년 4월까지, 또 그 이후까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바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이제는 소모적이고 분열적인 경쟁 대신 야권 혁신과 인재영입, 국민들의 삶의 문제 등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의제를 두고 ‘한판승부’를 벌였으면 합니다. 이종격투기 중계가 아니라 고수들이 벌이는 환상적인 랠리 말입니다. 물론 여야간의 승부도 이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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