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이승준의 핑퐁_팬과 국민의 눈으로 바라보면
원정도박 의혹 3인방이 KS에 나오지 못한 이유
머릿속 시계는 지난해 10월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개막을 앞두고 임창용·윤성환·안지만(삼성라이온즈)의 ‘마카오 원정 도박’ 의혹이 터졌죠. 라이온즈 팬으로서 아찔했습니다. 세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동시에 팀의 핵심 전력이었습니다. 정규 시즌 다승 3위(17승8패)의 든든한 선발투수인 윤성환 선수, 홀드 1위(37개)로 리그 최고의 중간투수인 안지만 선수, 33세이브를 올리며 구원왕을 차지한 임창용 선수가 한국시리즈에서 빠지는 것은 차와 포를 모두 떼고 장기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팬으로서 이들 없이 경기를 치르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입니다. 구단도 고심했습니다. 세 선수 모두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채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이들의 이름을 공개하기 쉽지 않다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단은 이들을 한국시리즈 출전명단에서 빼기로 했습니다. 당시 김인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선수단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과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친 점 사과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모기업인 삼성그룹을 등에 업은 구단이 “수사에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나오는 상태에서 세 선수를 감싸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죠. 5년 연속 정규시즌·시리즈 통합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삼성라이온즈는 결국 두산베어스에 우승트로피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했습니다. 세 선수를 무리하게 명단에 포함시켜 우승해봤자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허구연 MBC 해설위원이 입에 달고 하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야구중계를 볼 때마다 그는 “프로야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스포츠다. 선수들은 그래서 더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페어 플레이는 기본”이라는 내용의 말을 자주 했습니다. 조금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일부 선수들의 잘못이 프로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존립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사실 프로스포츠계가 구성원들의 일탈에 엄한 잣대를 들이댄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일이 터질 때마다 ‘온정주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3년 7월 프로축구연맹은, 대표팀 공격수 최성국 등 승부 조작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선수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다 팬들의 비판이 거세자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엘지(LG)트윈스의 유망주 투수였던 박현준 선수 등이 승부조작을 한 것으로 드러나 영구실격 처분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도 구단이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제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쇼트트랙의 경우 지난해 9월 대표팀 훈련 도중 신다운 선수가 후배를 때린 데 대해 빙상연맹이 ‘경고’ 처분을 내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쇼트트랙은 파벌주의, 승부담합 등이 끊이지 않아 많은 팬들이 분노를 터뜨리는 종목입니다.
KBS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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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실수’에 국민들이 공분한다면
더민주 의원들의 구명 움직임도 이해는 갑니다. 노영민·신기남 의원의 경우 본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노 의원은 시집 강매 의혹을 부인하고, 신 의원 역시 외압 의혹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두 분은 평소 성실하게 의정활동을 해왔고, 당에서도 중요한 역할들을 해왔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당에서 그들의 의정 활동을 부정하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분이 받는 의혹은 국민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시집 강매 의혹은 ‘갑질 논란’, 로스쿨 외압 의혹은 ‘금수저·흙수저’ 등 최근 국민들이 공분하는 일들과 맞닿아있습니다.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기득권으로 바라보며 정치혐오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두 사건은 국회의 존립 기반에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야당만의 일이 아닙니다. 최근 정용기 의원이 ‘취업청탁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2014년 9월에는 ‘철피아’ 비리 관련한 송광호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며 ‘방탄국회’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도 기억납니다. 모두 국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온정주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약식 기소된 임창용 선수는 KBO로부터 2016년 국내 경기의 50%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지만 윤성환·안지만 선수는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겨울 전지훈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단 무죄추정의 원칙을 택한 구단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팬들에게서 쏟아지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더민주 의원들의 구명 운동은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이철희 뉴파티위원회 위원장의 비판으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두 의원에 대한 “징계가 과하다”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1960~1970년대 동남아시아에서 축구 강국이던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은 빈번한 승부조작을 뿌리 뽑지 못해 자국 팬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습니다. 한때 우리와 어깨를 겨루던 대만 프로야구 리그는 1990년대 후반 여러 차례의 승부조작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정치든 스포츠든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4월 총선을 앞둔 여야에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2008년에 정권을 넘겨준 더민주 등 야당에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와 내년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간이겠죠. 결국 1일 노영민 의원은 정치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가 불출마를 선언하며 밝힌 입장을 전합니다. “누구보다 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 국민 눈높이에서 보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윤리심판원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합니다. 책임 있게 제 거취를 정하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당에 대한 도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알려진 것과 실체적 진실 간 괴리 사이에서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원수구(誰怨誰咎), 다 저의 부족함과 불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무엇보다 저의 일로 제가 사랑하는 당과 선배 동료 의원들께 총선을 앞두고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누를 끼치고 있다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반드시 이뤄야 할 총선 승리의 길에 제가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당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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