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이승준의 핑퐁_전·후반 달랐던 문재인 인터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6일 오후 경남 양산시 자택에서 대표 퇴임 이후 근황과 최근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양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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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질문엔 숨 고르고 조심조심 “좋죠. 뭐 모처럼. 서울(에 꼭) 가야되나 하는 생각이 들죠.”
양산 생활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야권이 요동치는 시기에 한발 물러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해서일까. 시시콜콜 사생활을 이야기하기 꺼리는 전형적인 ‘부산남자’의 모습이 무심코 나온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진의를 읽어내긴 어려웠다. 물론 문 전 대표의 집을 둘러싼 풍경을 보다가 “서울 생각이 안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인터뷰가 시작된 6일 오전은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안개가 그의 집을 감싸는 것처럼 보였다. 집앞을 흐르는 개울은 밤새 내린 비에 물이 불어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었고 집 주변 곳곳에 서있는 나무들은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9살인 반려견 마루, 자신이 직접 일군 텃밭, 복숭아 나무 등을 소개하는 그의 표정엔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정치인 문재인은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 김종인 대표의 행보, 안철수 대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그의 말을 받아치면서 축구 경기가 떠올랐다. 전반전에 수비로 일관하다 후반전에 공격으로 전환하는 축구팀의 모습이었다. 그의 인터뷰는 김종인 대표의 행보에 신중히 답하던 전반전과, 안철수 대표를 향해 거침없이 쏟아낸 후반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인터뷰는 공교롭게도 안철수 대표가 “광야에서 죽겠다”며 더민주의 ‘야권통합’ 제의를 거부하던 그 시점과 겹쳤다. 김종인 대표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 전반전, 그는 공격수들을 하프라인까지 내려 수비를 두텁게 하는 전술을 택했다. 최근 햇볕정책에서부터 필리버스터, 공천 문제 등 문 전 대표와 김 대표는 분명 ‘시각차’가 존재했다. 문 전 대표가 마련한 ‘시스템 공천’ 혁신안이 백지화할 수 있다는 우려, 안보 이슈에 대한 야당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문 대표는 숨을 골랐다.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고르는 듯 신중히 답을 이어갔다. 김종인 대표에 대한 ‘쓴소리’를 예상했던 질문은 애초 목표를 찾지 못하고 헤맸다. “왜 김종인 대표였나”는 질문에 그는 “경제민주화의 적임자”라는 말과 함께 “신뢰한다”고 답했다. 대표 시절 “친노 패권주의는 없다”고 했던 그는 최근 김종인 대표가 “친노 패권주의, 운동권을 배제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 당이 확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인 문 전 대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납득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돌직구’를 던지는 스타일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대표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김종인’에 대한 평가는 다소 의외의 답으로 느껴졌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당이 일사불란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6일 오후 경남 양산시 자택에서 대표 퇴임 이후 근황과 최근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양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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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일단 평가부터 하자” 1시간 동안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적 휘슬이 울렸다. 안철수 대표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자 그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표현은 단호했고 거침없었다. 하프라인으로 내려와 있던 공격수들이 제 위치를 찾으러 전방으로 뛰어가는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김종인 대표의 야권통합 제의를 국민의당이 거절했는데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답 대신 그는 “일단 평가부터 먼저 하자”고 말을 잘랐다. 그는 그리고 “국민의당은 이미 실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권통합의 필요성과 안철수 대표에 대한 비판을 쉼 없이 이어갔다. (국민의당은 인터뷰가 보도된 7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야권분열의 책임은 문 전 대표에게 있다”고 반박했다.) 대표직에서 물러나 여의도 정치판에서 한발 물러서 있기 때문일까. 그는 안철수 대표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까지 처음으로 털어놨다. 지난해 문 대표와 안 대표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등에서 사안마다 엇박자를 냈다. ‘화성 재인’, ‘금성 철수’라는 비유까지 등장했다. 그때마다 문 전 대표는 안 대표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잘 모르겠어요. 안철수 대표의 생각을 잘 모르겠어요.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그래도 경계할 때 경계하지만 또 풀 때는 풀고 한잔하기도 한다. 그런데 안 대표는 술도 안 마시고 항상 말을 가리면서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법이 없어서 그 뒤에 갖고 있는 생각을 알 수가 없는 거죠. 현상적으로는 만나면 많이 공감하고 합의도 잘되는 편이에요. 그런데 돌아서서 보면 합의가 아닌 거예요. 속생각을 모르겠어요.” 총선이 ‘일여다야’로 치러질 기로에 놓인 시기에 진행된 그의 인터뷰는 “김종인을 신뢰한다. 국민의당은 실패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전반전과 후반전, 180도 다른 모습이 야권 지지층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그의 ‘전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더민주 내에서는 문 전 대표의 메시지에 대해 “할 말을 했다”는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지금은 문재인이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부정적 반응이 동시에 엇갈렸다. 문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번주부터 영남·강원 등 더민주의 ‘험지’ 지역에 선거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7일 이를 묻는 기자들에게 김종인 대표는 “나는 그런 요청한 적 없다. 본인이 당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 스스로 하실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 없다”고 답했다. _______
[관련 영상] ‘국민의당 내전’, 예고된 참사다/ 더 정치 #12
문 전 대표는 “지난 1년 돌아봤을 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나?”라는 질문에 “저와 더민주는 일체돼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잃고 얻고는 잘 모르겠고 저하고 더민주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더민주가 잃고 얻은 게 있을 테죠. 어쨌든 당이 상처를 받았죠. 꽤 많은 의원들이 당을 떠나가는 아픔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당이 달라졌죠. 앞으로 더 달라질 것이다, 그게 얻은 거죠. 원래 정치에 들어온 게 야당부터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재야와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방식으로 당이 넓어지고 새로워지는 걸 해왔는데 이제 시민사회에 그런 역량들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 당 스스로 달라져서 수권정당이 되고 국민 신뢰 얻어야 하는데 지난 1년 그 어려움 속에서 이제 발걸음을 뗀 거죠.” 결국 이날 인터뷰는 그가 생각하는 ‘다음 경기’를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다음 경기에서 그가 어떤 포지션을 맡을 수 있을지는 4월 총선이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6일 오후 경남 양산시 자택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산책하며 마당에 핀 매화를 보여주고 있다. 양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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