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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18 10:17 수정 : 2018.02.18 12:34

그래픽_김승미

정치BAR_이승준의 핑퐁_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컬링에서 배울 것들

그래픽_김승미

평창겨울올림픽을 마음껏 즐기는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난 13일부터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 후보자 등록을 한 6·13 지방선거 출마자들이다. 선거를 앞두고 돌아온 설 명절에 자신의 얼굴을 적극 알려야 하지만, 온 국민의 눈이 올림픽에 쏠려있다 보니 속만 끓이는 상황이다. 각 정당도 선거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현역 광역자치단체장들이나, 지방의회 의원은 ‘인지도’라는 무기가 있지만, 얼굴이 덜 알려진 도전자나 정치 신인들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 간다. 이럴 때일수록 호흡을 고르고, 올림픽 뒤 다가올 당내 공천 과정과 본선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이들에게 추천하는 겨울올림픽 종목이 있다.

바로 컬링이다. 스톤을 원 모양의 표적판인 하우스의 중앙(버튼)에 보내기 위해 열심히 얼음을 쓸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출마자들은 지역을 누비며 유권자들의 ‘마음’ 한가운데에 다가서려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국내에 생소한 종목이던 컬링은,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 미국·러시아 등 상위 팀들을 격파하며 순식간에 눈길을 끌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선 컬링 믹스더블(혼성 2인조) 대표팀 장혜지-이기정 선수가 지난 11일 캐나다에 패하면서 공동 6위(2승5패)에 그쳤지만, 세계적 강팀과 만만치 않은 경기를 펼치며 관심을 모았다. 대표팀은 14일부터 시작된 남녀 4인조 경기에서 올림픽 첫 메달을 노리고 있다.

인지도 부족에 울고 있는 출마들자에게 순식간에 매력 넘치는 스포츠로 부상한 컬링의 ‘반전’이 부러울지도 모른다. 마음 졸이며 올림픽을 보고 있을 출마자들과, 올림픽 재미에 흠뻑 빠져있을 유권자들에게 컬링이 정치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4가지를 정리해봤다.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1. ‘부지런히’, ‘제대로’ 쓸어야 한다

컬링 믹스더블 국가대표 이기정 선수가 지난 9일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예선 4차전에서 스위핑을 하는 장면. <한국방송>(KBS) 유튜브 채널 갈무리

컬링을 볼때 가장 눈길이 가는 장면은 선수들이 얼음바닥을 부지런히 닦는 모습이다. 브룸(broom)이라는 솔로 ‘빗자루질’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동작을 스위핑(Sweeping)이라고 한다. 스위핑은 컬링의 핵심이다. 컬링 빙판은 스피드스케이팅처럼 매끈하지 않고, 수 없이 많은 얼음 알갱이(페블ㆍPebbleㆍ자갈)가 붙어 있어 오돌토돌하기 때문이다. 브룸으로 얼음 알갱이를 깎아내는 것에 따라 스톤의 속도나 방향이 바뀐다. ‘마찰력과 마찰열을 이용한 얼음판 당구’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스위핑 강도에 따라 이동거리를 3~5m까지 늘일 수 있고, 특정 방향으로만 닦아 스톤의 경로를 정하기도 하고, 닦아내지 않아 스톤을 정지시키기도 한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유권자들의 마음은 컬링의 얼음판처럼 울퉁불퉁하고 예측불가능하다. 자신의 스톤을 유권자들의 마음에 적중시키기 위해서는 지역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실시간으로 후보자의 활동과 뉴스가 노출되는 지금은 과거와 달리 자신의 자질이나 경력이 충분하다고 가만히 있으면 낙천이나 낙선의 쓴맛을 봐야 한다.

6.13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 선관위에서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예비후보자 등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무조건 열심히 하는건 능사가 아니다. 스톤을 하우스에 가깝게 제대로 보내야 하는 컬링처럼 표심을 잡기 위해서도 ‘제대로’ 쓸어야 한다. 일단 민주당 후보들은 ‘문심’(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마음)’을 표적으로 삼고 열심히 스위핑을 하고 있다.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로 치러지는 민주당 당내 후보 경선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중요하다. 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60~70%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문 대통령의 ‘후광’은 본선에서도 절대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보수결집’을 내세우려 하지만 평창올림픽을 ‘색깔론’으로 덧칠하려는 시도가 재미를 못 보는 모양새다. 대구·경북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를 노리는 출마자들은 4년 전 ‘전가의 보도’로 썼던 ‘박근혜 전 대통령 마케팅’대신 ‘박정희 마케팅’이라는 과거의 ‘빗자루질’로 돌아갔다고 소식도 들린다.(관련기사: 박근혜 열풍 사라지고…TK는 이제 ‘박정희 마케팅’ 시대?)

자유한국당을 대신해 ‘중도개혁 대안야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바른미래당과 호남에서 활로를 찾겠다는 민주평화당 출마자들의 빗자루질도 계속된다. 심상정 후보의 대선 선전을 이어 지방선거에서 다시금 존재감을 보이겠다는 진보정당 정의당도 얼음판을 뜨겁게 닦을 전망이다.

2. 전략이 좌우한다

지난 9일 미국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이기정 선수의 인터뷰. <문화방송>유튜브 채널 갈무리

컬링은 보통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불린다. 경기 전략이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컬링은 양 팀이 번갈아 투구하는 ‘1엔드(End)’을 10번(10엔드) 치러 총 점수로 승패를 가린다. 엔드 마다 양 팀 선수들의 머리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컬링경기에 생각할 시간을 주는 ‘싱킹타임’(thinking time·팀당 38분)이란 독특한 규칙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흡사 반상에 앉아 장고를 거듭하는 바둑이 빙판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4인조 경기의 경우 4명이 한 엔드에 2번씩 총 8번 스톤을 던진다. 즉 양팀이 엔드마다 16번 스톤을 던지는 것이다. 이때 ‘한수’, ‘한수’가 중요하다. 스톤을 하우스 안에 더 밀어 넣을지, 상대 스톤을 쳐낼지 등 공격적 플레이를 하느냐, 수비중심의 플레이를 하느냐의 선택에 따라 최종 점수가 갈리기 때문이다.

출마자들 역시 초반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특히 유력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하며 유권자에게 신뢰를 주는 게 핵심이다. 선거가 본격화 하면 현직을 공격하는 심판론이나 견제론, 안정을 강조하는 안정론 등 프레임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지방선거에 임하는 정당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민주당은 지난 보수정권 10년 시절 전국 선거마다 당 내부에서 나왔던 외부 후보 영입론, 당 대표 등 지도부 교체론, 다른 정당과의 연대·연합론이 제기되지 않는 ‘3무 선거’가 될 것으로 볼 만큼 판세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관련기사: 여야, 6·13 지방선거 ‘120일 열전’ 돌입)

이에 야당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보다 평창올림픽을 잘 마무리하고 개헌 이슈 등을 잘 관리하면서 민생을 책임지는 여당 이미지를 부각 시킬 가능성이 높다. 보통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 심판 성격을 띠는 지방선거이지만, 민주당은 현재 유지하고 있는 광역단체장 9곳을 포함해 부산시장과 경남지사 등 영남 일부, 경기도지사를 가져오는 꿈을 꾸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아마추어 정권 심판론’을 지방선거 구도로 내세우며 ‘심판론’에 시동을 걸고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붕괴된 보수진영과 추락한 당 지지율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을 밀어내고 ‘대안야당’이 되겠다는 바른미래당이 보수층의 표심을 얼마나 가져올지, 비교섭단체로 전락한 민주평화당이 호남에서 존재감을 보일지도 앞으로의 전략에 달렸다. 후보 기근에 시달리는 야당들이 ‘야권연대’라는 오래된 전략을 다시 꺼내 들지도 관심거리다.

3. 언제든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지난8일 강원도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겨울올림픽 컬링 믹스더블 1차 예선 대한민국과 핀란드의 경기. <한국방송>유튜브 채널 갈무리

컬링은 양궁과 달리 스톤을 던질 때마다 점수를 계산하지 않는다 각 엔드 마지막 스톤을 던지고 스톤이 모두 멈춘 뒤에 점수 계산을 한다. 처음에 하우스 한가운데인 버튼에 스톤을 넣는 건 중요치 않다. 다음 스톤이 그 스톤을 쳐내서 밖으로 밀려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컬링은 상대평가다. 득점은 누가 버튼에 가깝게 스톤을 붙였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승자팀은 버튼에서 가장 가까운 상대편의 스톤보다 버튼에 더 가까이 붙인 스톤의 개수만큼 점수를 획득한다.

선거 역시 초반 선전은 무의미하다. 여러가지 변수들이 불거지며 판세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는 애초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우세가 전망됐었다.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전격 통합을 선언하며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됐고, 세월호 참사로 인한 박근혜 정권과 여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가 치솟을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선거결과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패배라는 결론이 나왔고, 그해 7월31일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선거결과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놨다. 공천과정에 불거진 잡음과 무능한 야당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랐다. 그보다 4년 전, 천안함 사건이라는 대형 안보 이슈가 불거진 2010년 6·2지방선거의 경우에도 북풍이 보수에 유리하다는 선거전망이 무색할 정도로 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처음에 던진 스톤이 하우스 중앙에 들어간다고 박수칠 수 없는 컬링처럼, 선거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방선거 출마자나 정당이 남은 4개월을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4. 조직력과 체력이 중요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G-30 미디어데이'가 열린 지난 1월10일 오후 충북 진천군 진천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에서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평창겨울올림픽 국가대표팀은 모두 경북체육회 소속 선수들이다. 4년 전 소치 올림픽에선 경기도청 선수들이 모두 여자 대표팀에 선발됐다. 컬링이 선수들간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조직력이 성패를 좌우하다 보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단일팀이 태극마크를 단다. 컬링을 ‘패밀리 스포츠’로 부르는 이유다. 감독과 선수 6명 모두가 김씨로 구성된 여자 대표팀은 ‘팀 킴’으로 불리는데 이중 김영미·김경애 선수는 친자매다.

이번 올림픽 컬링경기를 통해 ‘헐’과, ‘업’등의 컬링용어가, 믹스더블 장혜지 선수가 이기정 선수에게 경기 중에 자주 외치던 ‘오빠 라인 좋아요’ 등의 말이 화제가 됐다. 이는 스톤을 던지고, 스위핑을 하면서 서로 멀리 떨어진 선수끼리 서로 생각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호흡이 중요한 셈이다. (‘헐’은 서두르다는 뜻의 영어 ‘허리(hurry)’의 축약어. 스톤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브룸으로 바닥을 빨리 쓸라는 지시. ‘업(up)’은 스톤 속도가 빠르니 브룸을 들고 바닥 쓸기를 그만하라는 지시)

컬링은 체력도 중요하다. 스위핑 동작은 체중을 다 실어야 하기 때문에 근력이 중요하다. 2시간 30분~3시간 소요되는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도 필수다.

선거 역시 정당과 출마자들, 출마자 캠프의 호흡과 소통이 중요하다. 숨어있는 한표를 끝까지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조직력은 생명이다. 또 정당은 의원과 당원들이 한팀이 돼서 후보자를 지원해야 한다. 무소속 후보나 소수정당 후보보다 팀을 유지하는 정당 후보들이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이유다.

선거운동 기간 새벽에 일어나 종일 거리와 행사장을 헤매다 밤늦게 끝나는 강행군을 버티기 위해서는 체력도 필수다. 중앙당 후원회를 두고 후원금을 모금 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린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정당은 각 후보들에게 실탄(자금)을 지급할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바른미래당으로 통합된 바른정당은 지난 1월 당 후원 홍보 영상에 컬링을 활용했다. 유승민 대표 등 당직자들은 컬링을 하며 당 지지를 호소했고, 마지막 장면에선 바른정당의 당색이던 하늘색 스톤이 자유한국당으로 추정되는 빨간색 스톤을 밀쳐 내기도 한다. 바른정당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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