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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3 18:25 수정 : 2017.03.23 21:31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만약 탄핵정국이 아니었다면 올해 우리 사회 가장 큰 화두는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됐을지 모른다.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올해는 인구구조 변동의 꽤 중요한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15~64살)가 감소하고 노인인구(65살 이상)가 유소년인구(0~14살)보다 많아지는 첫해다. 내년에는 고령사회(노인이 14% 이상인 사회)에 접어든다.

‘이러다 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식의 호들갑은 떨 필요 없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인구구조 변동은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처음 맞닥뜨리는 ‘역피라미드 인구구조’에 적응하기 위해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대책이 필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은 이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이의 의사가 존중돼야 하는 것과 함께 말이다.

이달 초 일본의 저출산 대책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모타니 고스케 일본총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제성장이나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고 싶으면 낳을 수 있고, 낳고 싶지 않으면 낳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적어도 겉으로는 “결혼·출산은 개인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기본이다. 단 결혼·출산·육아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형성되도록 환경을 정비한다”(‘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의 기본이념 중)고 말하며 저출산 대책이 국가주의적 캠페인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은 방치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비난한다.

우리 사회에서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부족한 보육시설, 아이를 돌볼 시간을 주지 않는 장시간 노동, 출산과 육아에 적대적인 직장문화 등. 그 중심에 불안정한 일자리와 소득 불평등이 있다.

아베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1억 총활약 플랜’으로 불린다. 출산율을 1.8로 끌어올려 50년 뒤에도 인구 1억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저출산 대책과 달리 노동과 임금 문제를 맨 앞에 내세운 게 눈에 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의 80%(현재 56.6%)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최저임금 1천엔’이라는 목표도 제시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은 아베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책은 임금이 인상돼야 소비를 촉진해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다는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용 불안, 저임금 등 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저출산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깨달음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굳이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1974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청년들의 ‘결혼파업’이다. 국내 20~30대 남성노동자의 결혼 비율을 임금수준별로 분석해보니, 임금이 높을수록 결혼한 사람의 비중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아이가 너무 좋은데 나같이 살까 무섭다.” “다음 생엔 꼭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야지.” ‘일본의 저출산 극복법, 먹고살 만해야 낳는다’(<한겨레> 21일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누구를 위해 애를 낳으라는 건가. 부자들을 위한 노예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친 표현도 있었다. 불안하고 고단한 삶, 불합리한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다. 불평등 대책 없는 저출산 대책이 공허한 이유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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