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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5 22:10 수정 : 2016.05.26 10:20

2016 한국,‘여혐’과 마주서다
③ ‘평범남’이 어떻게 여혐에 물드나

직장인 김준호(29·가명)씨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하는 남자들을 ‘극혐’(극히 혐오)한다. “한국 여성은 삼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식의 발언엔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김씨는 “남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일베를 ‘눈팅’(작성하지 않고 보기만 하는 것)한다는 친구한테 뭐라고 한 적도 있다”고도 했다.

인터넷엔 운전 못하는 여성들을 조롱하는 ‘김여사’ 사진이 떠돌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하지만 스스로 ‘건전한 상식을 가진 남성’이라 자부하는 김씨가 자주 접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엔 ‘여성 혐오’(여혐) 콘텐츠가 넘쳐난다. 여성 운전자를 조롱하는 ‘김여사’ 영상·사진 등이 대표적이다. 김씨가 자주 들어가는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내는 김여사 관련 게시물이 하루에도 몇 건씩 올라온다. 이런 콘텐츠엔 대부분 ‘유머’나 ‘웃긴 영상’이란 제목이 달려 있다. “김여사 동영상 같은 걸 여혐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실제로 황당한 사고를 내는 게 대부분 여성들인 건 사실 아닌가요?”라고 김씨가 말했다.

지난 18일 보배드림엔 볼라드(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돌)를 부수고 주차한 차량 사진이 올라왔다. 게시물엔 ‘김여사 주차 클라스 보고가라’는 제목이 달렸다. 운전자가 여성이었다고 기정사실화한 이 게시물엔 147개의 댓글이 달렸다. “운전자가 여성인지 보셨나요? 김여사들은 보통 검은색 차 안 타는데…”, “음주(주차) 아니냐”며 의구심을 제기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역시 미친×”, “진짜 주차면 저런 ×들 밑에서 자라는 애들이 더 걱정”이라는 여성 비하적 댓글이 주를 이뤘다. 실제 면허소지자 대비 사고발생률(2015년 도로교통공단 자료)을 보면, 여성 운전자의 사고발생률(100명당 0.34건)은 남성(100명당 1건)에 비해 훨씬 낮다. 박권일 칼럼니스트는 “‘여성은 남성보다 운전을 못한다’는 편견을 일반화하는 동영상을 돌려보며 유머로 소비하는 사이, 여성을 비웃고 조롱하는 혐오 정서는 더욱 강화된다”고 말했다.

미숙한 운전사고 ‘김여사’ 대표적
생각없이 보면서 웃고 화내다
수많은 동조댓글에 고정관념으로

‘된장녀 골탕 먹이기’ 등 동영상
클릭만 하면 수두룩해 ‘무감각’
여성이 돈 얘기하면 “이런~김치녀”

야구·자동차 등 남성들이 많이 몰리는 커뮤니티뿐 아니라,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특별히 찾아보지 않아도 여혐 콘텐츠에 노출되는 빈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유튜브 등은 이용자가 이전에 본 콘텐츠 등을 토대로 ‘맞춤 동영상’을 추천한다. 한 예로 <제이티비시>(JTBC)의 ‘한국여자 공략법’이라는 2분25초짜리 클립 영상을 한 번 보고 나니, 메인화면에 곧장 ‘된장녀 골탕먹이기’, ‘오픈카를 산 남친, 여자들의 유혹 반응은’이라는 여성 혐오성 영상이 줄줄이 떴다. 페이스북에선 친구가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눌러 관련 콘텐츠에 노출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렉트로닉 음악 레이블 ‘영기획’을 운영하는 하박국씨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중·남고 6년, 군대 2년과 나머지 기간 동안 남성들의 커뮤니티에서 보고 듣고 직접 저지른 것은 ‘여성혐오’였다”며 ‘10분 동안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 일상적인 여혐의 사례’(그래픽)를 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여성 비하·혐오성) 콘텐츠에 노출돼 쉽게 접하는 것 자체가 혐오 발언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엔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무개념’ 소개팅 여성에 대한 카카오톡 갈무리 글이 떠돌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무의식 속 편견은 ‘미혼여성 10명 중 7명 “결혼 후 일 그만두라는 애인 말에 땡큐”’ 같은 결혼정보업체의 설문조사 결과 등을 접하며 ‘기정사실화’되기도 한다. 대학생 이아무개(25)씨는 “일베 같은 곳에서 김치녀, 김치녀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소개팅에서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많이 내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여자를 만난 이후, ‘이런 사람을 김치녀라고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여성 혐오는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이 뭔가를 했는데 그 사람의 개인적인 특성 때문이 아니고 ‘여자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모든 속성을 여자라는 ‘성별’로 환원하는 것”이라며 “기존에 한국 사회에 존재했던 여성 혐오 때문에 유머 코드로 소비되는 것에 가깝다. 특히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편견들이 강화되고 공유되면서 불어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편견을 확고히 하게 된다”고 짚었다.

박수지 고한솔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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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2016 한국, 여성혐오와 마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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