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대표와 회원 등이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추모행사 참여자에 대한 인권침해에 공동대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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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한국,‘여혐’과 마주서다
④ 우리 안의 또다른 혐오들
‘짱꼴라는 미개한 바퀴벌레 종족’, ‘장애인 같다’, ‘늙었으면 뒈져’, ‘발정난 암캐년’….
인터넷 공간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은 갈수록 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해 1059건(11월까지 기준)의 인터넷 혐오표현에 대해 심의한 결과, 833건에 대해 시정요구 조처를 내렸다. 2013년보다 심의 건수가 30% 가까이 늘었다. 대부분이 인종과 성별, 장애, 출신지역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경멸하고 배척하는 표현들이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여성혐오 현상의 뒤에는 더욱 광범위한 사회적 소수자·약자에 대한 혐오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여성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겨냥해 적대감을 표출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페이스북에서 “사회학적으로 혐오는 신자유주의 경쟁이 강화되면서 드러난 개인적 체념, 무뎌진 도덕성, 불안의 확산 등을 배경으로, 극단주의자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메커니즘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박권일씨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사회적 약자 집단에 대한 혐오 표출이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사회구조적 모순 탓에 자신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여성·이주노동자 등이 능력과 자격 이상의 혜택을 받고 있어 내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혐오의 감정을 키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혐오 문화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를 개선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정인을 직접 지칭하지 않더라도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겨냥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도 처벌하고, 혐오 범죄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하는 등의 규제 입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장애인 혐오 일베 “~도 못하는 장애인” 비하 표현 사용
정신장애-범죄 연결 “강제격리” 댓글몰이 ‘부모나 이성에게 의존한다’, ‘복지기관의 혜택을 받는다’, ‘4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 26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는 이런 내용으로 ‘여성’과 ‘장애인’을 비교한 표가 올라왔다. 여성이 (남성에게) 동등한 취급을 요구하는데 장애인은 그렇지 않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게시물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애인은 동등한 취급보다 더 높은 걸 바란다’는 댓글이 붙었다. 일베에선 ‘무엇을 잘 못하는 이’를 비하할 때 대놓고 ‘~도 못하는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장애를 ‘비참함’의 동의어로 삼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장애인 혐오는 현실 전반에도 크고 작게 퍼져 있다. 지체장애인 홍아무개(37)씨는 “출근길 전동휠체어로 버스에 오를 때면 ‘남들 출근하는데 왜 이 시간에 다니느냐’는 이야기를 반말로 들은 적도 많다”며 “(장애인 혐오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전세 내주길 거부한 집주인,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의 출입을 막은 음식점 주인 등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장애인 관련 진정사건만 해도 4490건(전체 진정사건의 42%)에 달했다. 특히 이번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의자 김아무개(34)씨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진 뒤, 인터넷에선 정신장애인들을 ‘잠재적인 살인마’로 싸잡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들까지 잇따르고 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는 “(정신질환 대책만 세우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것이라는 식의) 국가기관의 장애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이 시민들의 혐오로 번지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며 안타까워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성 소수자 혐오 ‘정신병’ ‘에이즈환자’ 등 이상한 눈길
청소년 소수자 92% “혐오발언 경험” 보수 기독계가 주축이 된 기독당은 지난 17일 서울행정법원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서울광장 사용허가 집행정지’ 소송을 냈다. ‘동성애’는 “타락한 성문화의 일종”이고 “혐오감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음달 11일로 예정된 한국 최대 성소수자 문화행사 ‘퀴어문화축제’를 허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향한 이런 비뚤어진 시선은 비단 특정 종교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외대에선 ‘티브이 연출의 이해’ 강좌를 맡은 한 강사가 “동성애자는 치료받아야 할 후천적 정신병”, “동성애자는 100퍼센트 에이즈 환자”라고 발언한 사실이 게시판에 올라와 알려진 뒤 학생들의 거센 항의로 교체됐다. 지난해 10월 조우석 <한국방송>(KBS) 이사는 한 토론회에서 “내 언어가 더러운 게 아니고 동성애자들이 벌이는 뻔뻔한 행각이 민망하고 더러울 뿐”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성소수자는 혐오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200명) 중 92%에 이르는 10대 청소년 성소수자가 “다른 학생으로부터 혐오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대 이상 조사 대상(518명) 중 41.7%는 “직장에서 정체성을 이유로 따돌림, 조롱, 성폭력 등을 경험한 적 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혐오 단체들은 ‘동성애 치료, 치유’라는 표현을 내걸고 ‘탈동성애인권포럼’ ‘동성애치유상담’ 등도 진행하고 있다. ‘희망을 만드는 법’ 한가람 변호사는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논란이 일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성소수자 혐오 기류가 강해졌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이주 노동자 혐오 “당신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 없어진다”
욕설에다 반말…‘잠재적 범죄자’ 취급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일하냐. 당신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다 없어진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한국으로 이민 온 섹 알 마문(42·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며칠 전 모르는 남성에게 전화를 받았다. 마문은 “한국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는 것이다. 한국인도 다른 나라로 가서 일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그 남성은 “오란다고 오냐, 양심도 없다”고 소리치곤 전화를 끊었다. 지하철에서 옆에 있던 남자 2명이 자신을 힐끔거리며 “무슬림 ××들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경험도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9~11월 전국 19~74살 성인 4000명, 청소년 36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를 보면,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동의한 비율이 31.8%로 미국(13.7%), 오스트레일리아(10.6%), 스웨덴(3.5%)보다 훨씬 높았다.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국장은 “많은 사용자가 이주노동자를 ‘야’라고 부르고 욕설도 자주 한다. 가혹 행위로 노동청에 신고하면 ‘개를 길렀더니 은혜도 모르고 주인을 문다’고 흥분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경향도 강하다. 기독자유당은 지난 총선에서 “정부가 하려고 하는 할랄단지가 조성되면, 무슬림 30만명이 거주하게 돼 대한민국이 테러 위험국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3년 자료를 보면 내국인의 경우 10만명당 3647건의 범죄를 저지른 반면, 외국인은 10만명당 1585건에 그쳤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디스팩트 시즌3 방송 듣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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