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02 18:59
수정 : 2018.08.02 19:37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세종 14년 4월 최치(崔値)는 고성 군수로 재직할 때 아전 이자련과 공모해 나라 재물을 횡령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횡령 액수는 쌀로 치면 거의 6000석에 가까운 엄청난 양이었다. 하나 이상한 것은 조사 과정에서 최치가 당시 사헌부 대사헌으로 재직하고 있던 신개(申槪)에게 뇌물을 주었노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뇌물이란 것은 다름 아닌 생대구 두 마리였다.
신개는 자신의 벼슬을 갈아달라고 세종에게 요청하였다. 세종과 조정 중신들은 의논 끝에 신개의 대사헌 벼슬을 갈지 않기로 결정했다. 워낙 신개가 받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또 그의 품성이나 평소 행동으로 보아 받은 것을 받지 않았다고 할 리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이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명백한 근거가 될 수는 없었다.
신개는 수소문 끝에 문제의 생대구 두 마리는 최치가 신개의 종형인 신정도(申丁道)의 노비인 망달(亡達)에게 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망달은 강원도에서 4, 5년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머물던 숙소의 주인이 최치와 친척이었다. 이것이 망달이 최치와 안면을 튼 근거였다. 그 뒤 망달이 고성에서 며칠을 머무르고 떠날 때 최치에게 인사를 하러 가자, 최치는 망달에게 생대구 두 마리를 주었다. 명목은 노신(路神)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라는 것이었다. 망달은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과연 여행의 무사안녕을 비는 제사에 썼고, 남은 한 마리는 아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다.
사실 관계를 파악한 신개는 망달이 아는 사람에게 대구를 선물할 때 목격한 사람이 여럿 있으니, 그들을 불러 대질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고성에서 서울까지 열흘이 걸리는데 썩기 쉬운 생대구를 보낼 리 만무하다는 것, 또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이 어떻게 겨우 생대구 두 마리를 보냈겠느냐는 것, 또 최치와 자신은 평소 일면식도 없고 친척도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이 결백하다는 증거로 들었다. 요컨대 최치가 자신에게 생대구 두 마리를 뇌물로 보낼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신개가 대사헌을 그만둘 이유는 없었지만, 사헌부는 관료들의 비위사실을 적발하여 탄핵하는 것을 업무로 삼는 기관이 아닌가. 따라서 그 우두머리인 대사헌은 뇌물을 받았다는 의심만으로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신개가 벼슬을 갈아달라고 요청한 이유였다. 그렇다면 최치는 왜 신개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했을까. 어떻게 하든지 조정의 중신을 뇌물죄로 얽어 넣으면, 자신의 죄가 감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최치의 죄는 참형(斬刑)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참형에 처해지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직첩도 돌려받았다. 지금 세상인들 다를까.
노회찬 의원! 그 생대구 두 마리조차 받지 않으셔야 했습니다. 저들이 어떤 자들인지 모르셨단 말입니까. 생대구 두 마리가 아니라, 고래 같은 뇌물과 국고를 삼키고도 뻔뻔스럽게 부인하는 자들이 아닙니까?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당신의 걸걸한 목소리가 몹시도 그립습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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