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04 20:08
수정 : 2018.10.04 20:56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양성지(梁誠之, 1415~1482)는 조선 건국 이후 국가의 여러 제도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꽤나 평판이 좋은 인물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가 1468년(세조 14년) 사헌부 대사헌으로 있을 때 올린 상소 하나를 보자.
이 상소에서 양성지는 공물(貢物)과 의창(義倉), 사창(社倉), 형벌 등 여러 가지를 거론하는데, 내가 각별히 주목하는 것은 노비 문제다. 주장의 핵심은 노비의 소유권을 이전할 때(매매이건 상속이건) 관청에서 소유권 이전에 관한 문서를 발행해 주는 것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토지의 소유권 이전은 문서를 작성해 관청에서 관인을 찍고 확인하는 절차를 공식적으로 거치지만, 노비는 그런 절차가 없어 소송이 그치지 않기 때문에 보다 확실한 공증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성지는 왜 노비 소유권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던 것인가. 그에 의하면, 노비는 사대부가 삶을 의지하는 도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士大夫倚以爲生者也). 달리 말해 토지가 사람의 명맥이라면, 노비는 사대부의 수족인 것이다(夫田地, 人之命脈;奴婢, 士之手足). 곧 노비는 토지와 함께 사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였다. 뒤집어 말하자면, 노비 없는 사족 체제는 존립할 수 없다. 따라서 노비의 확보는 사족의 절대적 관심사였다. 노비는 한 번 노비면 영원히 노비다. 부, 모 중 한 사람이 노비면 자식은 자동으로 노비가 된다. 그런 법을 만든 것이 바로 조선의 양반들이었다. 현대의 학자들은 조선 전기 인구의 30~40% 정도를 노비로 본다. 많게는 50%까지 보기도 한다.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1518년(중종 13년) 장령 유옥(柳沃) 등은 소수 부호의 토지와 노비의 독점이 경제적 양극화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고 노비와 토지의 소유를 제한하는 제도를 실시할 것을 요청했다. 당연히 실행되지 않지만, 그의 말 가운데 눈에 띄는 부분이 하나 있다. 천민, 곧 노비층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5, 6천 명의 노비를 소유하고 있는 자까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외적으로 많은 경우이겠지만, 수백 명의 노비를 거느리는 사족은 흔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퇴계 이황 집안도 3백 명 이상의 노비를 소유했으니까 말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얼마 전 국회 교섭단체연설에서 출산주도성장을 말했다. 아기를 많이 낳도록 1억 원을 지급하는 정책을 쓰자는 것이다. 그래, 돈을 준다니 좋기는 한데, 왜 아기를 많이 낳아야 하는가. 나는 출산주도성장이란 말에서 ‘성장’이란 말에 마음이 걸린다. 태어난 아기는 성장, 곧 경제성장의 도구적 존재란 말이다. 그것은 아기를 출산한 부모의 행복도, 태어난 아기의 행복도 아닌 경제성장을 위해서 아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닌가.
양성지가 노비의 매매, 상속에 합리적 공증과정의 도입을 주장한 것이 과연 노비의 행복을 위해서였을까? 그 합리적인 공증제도를 통해서 어떤 개인은 5천 명 노비의 소유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출산주도성장이란 말에서 나는 문득 인간을 노비로 삼았던 사족 체제와 양성지의 얼굴을 떠올린다. 1억 원을 받고 태어난 아기는 혹 자본의 성장을 위한 5천 명의 노비 중 한 사람이 아닐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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