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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5 06:00 수정 : 2019.04.05 20:02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딸을 포함해 총 6명의 케이티(KT) 부정채용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서유열 전 케이티(KT)홈고객부문 사장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책과 생각] 강명관의 고금유사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딸을 포함해 총 6명의 케이티(KT) 부정채용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서유열 전 케이티(KT)홈고객부문 사장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조선시대 때 중앙관서 관료의 재직기간은 굉장히 짧다. 임명된 지 몇 달 되지 않아 갈린다. 관직을 원하는 사람은 많고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벼슬이 갈리면 나랏일은 누가 하는가? 약 1200명 정도의 서리(書吏)가 맡아서 한다. 양반관료들은 강물처럼 지나가고 서리는 바위처럼 굳건하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나랏일을 실제 담당하는 서리는 어떻게 선발하는가?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에 의하면, 서리는 취재(取才)란 시험을 거쳐 뽑았다. 시험과목은 해서(楷書)와 행산(行算), 곧 글씨 쓰기와 계산이었다. 그런데 1754년에 만들어진 <속대전>(續大典)을 보면, 취재에 관한 조항은 폐지되고 ‘방민(坊民) 중에서 뽑는다’는 조항이 신설되어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양민 중에서 뽑는다는 것이다. 18세기 중반 이후 서리를 선발하는 공식적인 제도 자체가 없어졌던 것이다. 서리는 양반관료에 견주어 위상이 확연히 낮지만, 양반관료들은 행정실무에 무지하기에 서리가 없으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 서리를 뽑는 공식적인 선발규정이 없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속대전> 이후 서리는 어떻게 뽑았던 것인가.

17세기 중반 이후 양반은 서울양반과 지방양반으로 분리되고, 지방양반은 중앙관서의 관직에서 배제되기 시작한다. 반대로 서울에는 누대(累代)에 걸쳐 계속 벼슬을 하는 거대한 양반가문이 출현한다. 이런 집안을 경화세족(京華世族) 혹은 경화벌열(京華閥閱)이라고 불렀다. 경화벌열 가문은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집안의 범백사(凡百事)를 처리하기 위한, 일종의 가내 비서격인 겸인(?人·청지기)이 많게는 수십명까지 있었다. 그런데 중앙관서의 서리가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들 경화세족 가문의 겸인들이었다. 곧 유력한 서울양반가의 청지기가 되는 것이 중앙관서의 서리가 되는 길이었다. 세력가의 청지기가 국가공무원이 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냥 관행으로 여기고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19세기가 되면 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구한말을 직접 경험했던 안확(安廓·1886~1946)에 의하면, 서리직은 ‘매매하는 것’으로 그때 주고받는 돈을 ‘전수전’(傳授錢)이라 한다는 것이다. 못 믿으시겠다고? 확실한 증거가 있다. 1864년 이윤선(李潤善)이란 사람은 자신의 호조 서리직을 1800냥에 팔았다가 이듬해 1900냥으로 다시 사들였다. 호조는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부서다. 돈으로 호조 서리직을 산 사람이 과연 국가의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했을 것인가? 1864년이면 고종 1년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즈음 조선 사회가 어떤 모양이었는지는 잘 아실 터이다.

케이티(KT)의 사원 채용에 권력 있는 자들이 그들의 자식과 측근을 부정하게 꽂아 넣었다고 한다. 실상을 철저히 밝혀 가혹할 정도로 엄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부정채용을 관행처럼 여기고 결국에는 채용의 기회를 사고팔게 될 것이다. 권세가의 청지기를 중앙관서의 서리직에 꽂아 넣는 것을 관행으로 삼다가 나중에는 그 자리를 사고팔기까지 하더니, 조선은 결국 패망의 길을 걸었다. 취업 비리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라가 망하는 길일 수 있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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